샌프란시스코의 555 마켓 스트리트, 그 유리문은 산동네 낡은 집의 녹슨 철문과 닮은 데가 하나도 없었다.
문은 소리도 없이 열렸다. 로비 안에서는 사람들이 사원증을 단말기에 가볍게 대고 엘리베이터 속으로 사라졌다. 커피를 든 엔지니어들이 빠르게 스쳐 갔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가슴에 안고,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걸었다. 양복과 후드티가 같은 보폭으로 움직이는 거리. 2016년 봄의 마켓 스트리트는 늘 그렇게 분주했다.
태훈은 잠시 유리문 앞에 멈춰 섰다.
Uber. 그해의 그 이름은 단순한 회사가 아니었다. 적어도 이 도시에서는 그랬다. 사람들은 그곳을 택시 앱이라 부르지 않고 도시를 다시 설계하는 회사라 불렀다. 누군가는 오만하다 했고, 누군가는 위험하다 했고, 또 누군가는 거기에 미래가 있다고 했다. 엔지니어란 본래 그런 곳에 끌리는 족속이다. 문제가 크고, 복잡하고, 아직 아무도 깔끔하게 풀어내지 못한 곳. 실패할 확률이 높고, 그래서 성공하면 세상이 한 뼘 옮겨가는 곳.
그는 처음이 아니었다. 그 회사의 문을 두드린 것이. 전화 면접에서 떨어졌고, 나중에 전화 면접을 통과했지만, 현장 면접에서도 떨어지길 두어 차례. 보통은 그쯤에서 그만둔다. 그러나 그는 그만두는 일에도 서툴렀다. 그만둘 만큼 자기 인생을 확신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되면 말자. 안 되면 또 두드리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가서 말자. 그것이 평생의 방식이었다.
화이트보드 앞에 섰을 때, 늘 어렵던 코딩 라운드가 웬일로 술술 풀렸다. 시스템 설계도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엘리베이터 한 대를 움직이는 일이든 수억 건의 요청을 받아내는 분산 시스템이든, 결국은 같은 질문으로 환원된다. 상태와 부하, 장애와 회복. 그는 그 질문들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었다. 다음에서, 네이버에서, 블리자드에서, 삼성에서, 그리고 지금 다니는 옐프에서.
마지막 면접은 달랐다. 사람들이 바 레이저(Bar Raiser, 회사의 기존 인재 채용 기준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도입된 특별 면접관)라 부르는 자리. 면접관은 노트북에서 잠시 눈을 떼더니 물었다.
“살면서 가장 크게 실패한 일이 무엇입니까?”
질문이 끝나자마자 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외국어고등학교에 붙고도 끝내 가지 못했던 일. 등록금을 내지 못해 며칠이고 천장만 바라보던 방. 닷컴버블이 꺼지며 월급이 밀리던 사무실. 홧김에 회사를 박차고 나오던 날. 구글 면접에서 떨어지던 날. 종이상자 하나에 짐을 담아 안고 바트에 오르던 저녁.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짐을 싸 떠나오던 새벽.
실패는 추상명사가 아니었다. 그에게 실패는 언제나 만질 수 있는 것이었다. 실패는 종이였고, 냄새였고, 버스였고, 비탈이었고, 끊기기 직전의 전화벨이었다. 그 모든 것을 가로질러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장면은, 한 장의 창문이었다.
해발 육백 미터 천마산 자락, 부산 남부민동의 꼭대기. 곰팡이가 번진 창틀 사이로 허물어져 가는 시멘트 담이 보였고, 그 담 너머로 부산항이 내려다보였다. 항구는 늘 멀리 있었다. 배들은 움직였고, 컨테이너는 쌓였고, 도시는 어디론가 부지런히 향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 방 안의 소년만이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창밖에 있었다.
가난은 그 방에 고인 냄새였다. 제한급수 때문에 이끼가 낀 다라이의 물 냄새, 외상값 때문에 콩나물 한 봉지도 들고 나오지 못하던 가게 앞의 머쓱함, 값나갈 것 하나 없는 세간에까지 붙어 있던 붉은 압류 딱지. 등하굣길 담벼락에는 빛바랜 영화 포스터가 한 장 붙어 있었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소년은 그 영화를 끝내 보지 않았지만, 그 한 문장을 제 생의 마감 기한처럼 받아 적었다. 또래들이 스무 살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를 그릴 때, 그는 스무 살이 자기 생의 끝이라 조용히 정해두었다. 그래야 그때까지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성공한 사람들은 흔히 과거를 미화한다.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은 아름답지 않았다. 가난은 낭만이 아니었다. 가난은 배고픔이었고, 냄새였고, 선택지가 하나씩 사라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그 모든 냄새를 통과해 그는 지금 샌프란시스코 555 마켓 스트리트의 면접실에 앉아 있었다.
면접관은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그 창문이, 가지 못한 학교가, 부산의 비탈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너무 사적인 이야기였고, 면접관이 묻는 실패는 그런 것이 아닐 터였다. 그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일에 관한 실패를 골라 답했다. 작은 회사에서 자신을 한 사람의 엔지니어로만 한정했던 것, 더 멀리 손을 뻗지 못했던 것에 관한 이야기였다.
좋은 답이었다. 그러나 그날 그가 정작 말하지 못한, 더 크고 더 오래된 실패의 답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한 소년이 가지 못한 학교에서 시작되어, 면접실의 그 짧은 시간으로는 도저히 다 풀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이 책이 따라가려는 항로가, 바로 그 못다 한 답이다. 1979년 봄의 마산에서 시작해, 가리봉동의 단칸방과 천마산 자락의 셋방을 지나, 테헤란로의 유리 건물과 태평양 건너의 언덕들을 거쳐, 다시 판교로 돌아오는 긴 항해. 그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이가 그 두 배를 살아내고도 남은 자리에 도착했는가.
답을 미리 말해두자면 이렇다. 그는 그 거리를 노력으로 건넌 적이 거의 없다. 다만 매번 끝을 미뤘을 뿐이다. 안되면 말자, 하고 한 발을 떼었을 뿐이다. 안 된다는 조건은 늘 하나뿐이었지만, 그 반대편에는 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을 그는 머리가 아니라 생존으로 배웠다.
이제, 모든 것이 시작된 1979년 봄의 마산으로 돌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