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은, 그가 품었던 뜻만큼 펼쳐지지 못했다. 정해진 역할 안에서 자기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서로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신속히 결정했다. 다시 태평양을 건너, 얼마 전까지 지내던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1년 남짓의 짧은 귀향. 다만 그 짧음을 실패라 부를 수는 없었다.
돌아온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예전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미국에서 데이터를 다루던 그 시절의 기억이 깃든 곳. 그는 원래 속했던 팀으로 재입사 절차를 밟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찾아간 사무실은, 더 이상 그가 그리워하던 그곳이 아니었다. 물리적인 위치가 옮겨간 탓도 있었고, 팀원들이 물갈이된 탓도 있었고, 그새 기업공개를 거치며 회사의 공기 자체가 바뀐 탓도 있었다. 돌아갈 줄 알았던 자리는, 돌아가 보니 이미 다른 곳이 되어 있었다. 그리워하던 항구로 돌아왔더니, 항구의 모양이 달라져 있던 것이다. 그제야 그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자신이 그리워한 것은 그 회사가 아니라, 그 시절이었다는 것을. 장소는 돌아갈 수 있어도 시간은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재입사를 일단 보류하고, 잠깐 쉬며 남가주를 여행하기로 했다. 태평양 해안을 따라 차를 몰았다. 왼쪽으로는 끝없는 바다가, 오른쪽으로는 마른 갈색의 언덕이 흘렀다. 창을 열면 짠 바람이 밀려들었다. 마산 앞바다에서, 부산 항구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베이에서 평생 그를 따라다닌 그 물이, 이번에는 일 번 고속도로의 절벽 아래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며칠을 흘려보내는 동안, 그는 모처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보았다. 어느 회사의 누구도 아닌, 그저 해안을 달리는 한 사람.
달콤한 휴식도 잠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배부른 소리일줄도 몰랐다. 그 막막함은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선택의 여유가 생겨서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차비가 없어 옆집에서 돈을 빌리던 스물한 살의 그가, 이제는 어디로 갈지 고를 수 있어서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난이 선택지를 주지 않던 시절을 지나,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길을 잃는 자리에 그는 도착해 있었다. 그것은 분명 축복이었지만, 축복에도 나름의 무게가 있었다.
예전부터 동경하던 다국적기업의 면접을 보았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런데 회사는 그의 리더십에 큰 점수를 주며 매니저 역할을 제안했다. 막상 그 자리 앞에 서니 망설여졌다. 나이와 경력을 생각하면 매니저가 되라는 조언을 오래 들어왔지만, 그는 동료를 돕는 것보다 자기가 직접 문제를 푸는 쪽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네이버에서, 삼성에서 소질도 관심도 없던 관리자 자리를 떠맡고 메말라가던 기억이 아직 또렷했다. 맞지 않는 자리는 사람을 마르게 한다. 그는 그 제안을 보류했다.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안정인가, 균형인가, 도전인가. 그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지만, 솔직히 나도 나를 모르겠더라, 하는 심정이었다.
끌리는 곳마다 부딪쳐 보며 자신을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클라우드, 사회관계망, 음식 기술, B2B 분석, 각종 O2O 회사까지 여러 분야의 면접을 보았고 좋은 제안도 받았다. 그러다 뜻밖의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좋은 조건에도, 최근 몇 년 일해온 교통 분야 바깥에는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 바보같이, 하고 그는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다른 승차공유 회사에서, 그가 해오던 것과 비슷한 백엔드 개발자 자리를 좋은 대우로 제안받았다. 함께 일할 팀원들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소속이 바뀌는 것 말고는 그게 그것 같았다.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엔 무언가 부족했다. 그는 그 제안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쯤 되면 자신에게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교통이라는 분야에 혁신을 더하는 일에 그토록 보람을 느껴왔는데, 정작 그 안에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다 그는 한 가지 질문에 가닿았다. 이 분야의 미래인 자율주행은 어떨까.
매우 관심이 가고 흥미로웠지만, 그는 오랫동안 그것을 자기와 무관한 세계로 여겨왔다.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에는 문외한이었으니까. 자율주행은 천재적인 연구자들의 영역이지, 데이터 기반을 다루는 자신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문을 품고 있던 차에, 마침 한 자율주행 회사가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면접을 진행하면서 그는 알았다. 자율주행은 연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엄청난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고, 분석하고, 검증하는 거대한 기반이 필요했고, 그것은 정확히 그가 평생 해온 일이었다. 파고들 여지가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그는 곧장 이 분야에서 유망하다는 여러 회사에 동시에 지원했다.
이미 크게 성장한 회사, 큰 투자와 함께 대형 제조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한 갓 시작한 회사 등 다양한 곳을 만났고, 끝내 몇 가지 선택지를 손에 쥐었다. 그가 고른 곳은 죽스였다. 아주 작지는 않지만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적당한 규모, 여느 회사와 다른 제품 접근 철학, 그리고 배울 점 많은 훌륭한 동료들이 있는 회사. 2014년에 세워진 죽스는, 남들이 기존 자동차를 개조할 때 운전대조차 없는 차를 밑바닥부터 새로 설계하던 곳이었다. 승객끼리 마주 보고 앉는, 운전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로보택시. 가장 비싸고 가장 어려운 길이었다. 최고액 연봉도, 명성도, 안정성도 뒤로한 선택이었다. 잘해내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긴 방황 끝에 오롯이 자기 의지로, 자율로 내린 선택이었다.
여러 회사 중에서 그가 죽스를 고른 결정적인 이유 하나는, 칼 퀸이라는 사람이었다.
업계에 이름이 알려진 엔지니어였고, 태훈이 합류하게 된 팀의 테크 리드였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야로 들어가는 만큼, 그는 회사가 아니라 칼이라는 사람을 보고 그 배에 올랐다. 정원희에게서 개발자의 가능성을 보았듯, 이번에는 칼이라는 스승에게서 자율주행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배울 참이었다.
첫 출근 날, 그는 칼과 일대일 미팅을 했다. 칼은 코로나에 걸렸다고 했지만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다. 태훈이 읽어볼 자료를 좀 달라고 하자, 칼은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부분은 여기 있다고. 천천히 알려주겠다고. 첨이라는 파일 포맷, SS 테이블, 분산 환경에서의 난제들, 시뮬레이션 인프라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높은 수준의 생각들이 짧게 오갔다. 태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 여기서 정말 많이 배우겠구나. 새로운 스승을 만난 첫날의 설렘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칼이 세상을 떠났다.
회사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그가 속한 조직은 더했다.
당시 죽스는 투자금이 거의 바닥나가고 있었다. 후속 투자를 받으려면 중요한 마일스톤을 반드시 달성해야 했고, 그 중심에 시뮬레이션 인프라가 있었다. 그런데 그 인프라를 이끌던 리더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남은 사람들은 대부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태훈 역시 도메인도 기술 스택도 아직 잘 몰랐다. 합류하자마자 스승을 잃은 신입. 퇴사자도 나왔다. 도망갈 이유는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는 남았다.
그는 칼이 맡고 있던 영역의 일부에 리드 책임을 떠안았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로 자리에 먼저 앉고, 앉은 뒤에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은, 그의 평생 반복되어 온 일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는 칼이 바라보던 시뮬레이션 실행 인프라 위에, 자신의 경험을 더했다. 단순히 많이 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학습하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킥스아이와 삼성과 우버에서 익힌 데이터 엔지니어링이, 죽은 스승의 빈자리 위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 일은, 죽스가 아마존에 인수되는 데 필요한 마일스톤에 다가서는 기반이 되었다. 합류 직후 리더를 잃고 휘청이던 한 조직이, 신입으로 들어와 남기를 택한 한 사람의 어깨 위에서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좋은 평가와 보상도 받았다. 그러나 가장 오래 그의 가슴에 남은 것은 보상이 아니었다. 그 첫날이었다. 새로운 스승을 만났다고 설레던 날, 그리고 그다음 날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날. 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대부분은 여기 있다던 한 사람의 마지막 모습. 회사는 사라지고 이름은 바뀌어도 사람만은 남는다던 그의 오랜 믿음은, 이번엔 가장 아프게 증명되었다. 칼은 단 하루의 동료였지만, 그의 첫날은 평생 그의 안에 남았다.
죽스를 품게 되는 아마존에는, 창업자가 평생 강조한 한마디가 있었다. 데이 원. 늘 첫날처럼 일하라는 것. 갓 시작한 첫날의 절박함과 호기심을 잃는 순간 쇠락이 시작된다는 경구였다. 평생 가진 것 없이 늘 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에게, 그것은 새삼스러운 가르침도 아니었다. 그의 삶은, 언제나 데이 원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