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는 했으나, 할 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직원이 열 명 남짓한 작은 회사였다. 어디서부터 배워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몇 달 먼저 입사한 정원희와 김두성이 객체지향과 소프트웨어 공학과 자바를 설명해 주려 했지만, 기초가 없는 그에게는 너무 먼 말이었다. 클래스, 상속, 인터페이스 같은 단어들은 낯선 외국어처럼 들렸다. 설명을 들을 때는 알아들은 것 같았고, 다음 날이면 다시 사라졌다.
결국 사람들은 현실적인 결론을 냈다. 태훈은 HTML을 맡기로 했다. 그것이 굴욕이었는지 다행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HTML은 눈에 보였다. 태그를 고치면 화면이 바뀌었다. 색을 바꾸면 색이 바뀌고, 위치를 옮기면 위치가 옮겨졌다. 자바처럼 추상적인 세계가 아니었다. 입력과 출력이 어김없이 연결되는 세계. 오락실의 화면이 그랬듯, 그는 또 한 번 눈에 보이는 것을 붙잡고 버텼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하는 일이라면, 그는 이미 전문가였다.
정원희는 그가 현실에서 처음 만난 진짜 프로그래머였다.
그전까지 프로그래머는 멀리 있는 사람이었다. 강연장의 안철수, 잡지 속의 개발자들. 그러나 정원희는 같은 사무실에 앉아 같은 프로젝트를 했고, 때로는 같은 지하방에서 합숙했다. 그런데도 어딘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나우누리 자바동의 시삽이었다. 당시 온라인 개발자 커뮤니티의 시삽이란 단순한 게시판 관리자가 아니라, 지식이 모이는 자리의 한가운데에 선 사람,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어느 날 태훈은 그가 스팍 서버를 만든 회사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 영어로 직접 기술 문제를 묻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이 오래 남았다. 영어가 놀라웠던 것이 아니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놀라웠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지고, 그래도 안 되면 그 기술을 만든 회사에 직접 묻는다. 문제 앞에서 위축되는 대신, 문제를 둘러싼 모든 길을 찾아보는 사람. 정원희는 그런 사람이었다.
Brain Upgrade라는 지식관리시스템 프로젝트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 브라우저 안에 데스크톱 같은 화면을 띄우는, 지금 말로 하면 WebOS 스타일의 무모한 작업이었다. 태훈은 그 난이도를 잘 몰랐다. 모르면 때로 무섭지 않다. 그는 그저 따라 만들고 있었다. 정원희가 그의 모니터 앞에 섰다.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태훈은 긴장했다. 오류를 지적받을 줄 알고 몸을 굳혔다. 그런데 정원희는 짧게 말했다. 존댓말이었다.
자바스크립트는 진짜 잘 짜시네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 그냥 흘러갔을 말이다. 그러나 회사에서 가장 많이 아는 사람처럼 보이던 그가, 자신의 코드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태훈은 그날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말은 칭찬 이상이었다. 그것은 허가증에 가까웠다. 이 일을 계속해도 된다는 허가. 지금은 보잘것없어도 언젠가 개발자가 될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의 증서.
평생 자기 안의 목소리에게 너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온 그에게, 외부에서 건너온 한마디의 인정은 그렇게 큰 무게를 가졌다. 사람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바뀔 때 조금씩 달라진다. 정원희는 그가 처음으로 닮고 싶었던 거울이었다.
입사 한 달쯤, 회사는 몇 명을 서울로 보냈다. 투자를 받으려면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벤처의 시대였고, 모든 길은 테헤란로로 향하는 듯 보였다.
서울 사무실은 삼성동 테헤란로의 대종빌딩에 있었다. 포스코센터 맞은편이었다. 그 무렵 테헤란로는 한국의 실리콘밸리, 이른바 테헤란밸리라 불렸다. 강남역에서 삼성역까지 곧게 뻗은 그 길을 따라, 벤처라는 이름의 회사들이 빌딩마다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있었고, 오라클과 컴팩의 간판이 걸려 있었고, 드림위즈가 있었다. 신문과 잡지에서만 보던 이름들이 실제 간판이 되어 거리에 늘어서 있었다. 코스닥이 연일 치솟던 그 시절, 그 길 위에는 누구나 곧 무언가가 될 것 같은 공기가 떠다녔다. 포스코센터의 거대한 유리 큐브가 한낮의 빛을 통째로 받아 번쩍였고, 길 끝에는 무역센터의 트레이드타워가 하늘을 찌르고 서 있었다. 밤이 되어도 빌딩의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길의 끝, 무역센터 지하에 코엑스몰이 있었다. 2000년에 막 문을 연, 그때껏 본 적 없는 거대한 지하 도시였다. 태훈은 점심시간마다, 퇴근한 밤마다 그 지하로 내려갔다. 코엑스몰은 미로 같았다. 한 번 들어서면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게 통로가 갈라지고 휘어졌고, 사람들은 길을 잃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는 곧 그 미로를 손금처럼 외워버렸다. 메가박스로 가는 가장 빠른 길, 반디앤루니스 서점의 어느 매대에 무슨 책이 놓였는지, 어느 모퉁이를 돌면 아쿠아리움의 푸른 빛이 새어 나오는지, 어느 푸드코트가 줄이 가장 짧은지. 그곳에는 창문이 없었다. 해가 떠 있는지 비가 오는지 알 수 없었고, 시간은 바깥과 무관하게 흘렀다. 늘 환하고, 늘 서늘하고, 늘 사람으로 북적이는 곳. 제한급수로 물을 받아 쓰고 압류 딱지 붙은 방에서 굶던 소년에게, 사철 밝고 따뜻한 그 지하 도시는 비현실적일 만큼 풍요로웠다.
그는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곳에 속한 사람이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환한 푸드코트에서 밥을 먹는 그 평범한 사람들 틈에 자기도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어떤 성취처럼 느껴졌다. 남부민동 꼭대기에서 그는 늘 창밖을 동경하는 이였다.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창 너머에 있었고, 그는 방 안에 멈춰 있었다. 그런데 코엑스의 그 환한 통로를 걸을 때만은, 처음으로 자신이 동경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서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는 마음 한구석에 작은 다짐 하나를 품었다. 설령 지금 이 빛에서 밀려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이 거리로 돌아오겠다고. 한 번 그 빛 안에 서본 사람은, 그 바깥의 어둠으로 순순히 돌아가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는 그때 알지 못했다. 그 다짐이 자신을 평생에 걸쳐 이 거리로 거듭 끌어당기리라는 것을.
천마산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던 부산항과는 정반대의 풍경이었다. 거기서는 배들이 움직였고, 여기서는 사람들이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그도 끼어 있었다.
그러나 낮의 테헤란로가 화려한 만큼, 밤의 생활은 초라했다. 퇴근하면 여러 명이 열 평 남짓한 지하 원룸에서 합숙했다. 성인 남자들이 서로의 발과 가방과 이불 사이를 비집고 잠을 청했다. 공기는 무거웠고 창은 작았다. 낮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 간판을 보며 출근했고, 밤에는 그 지하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그는 크게 불평하지 않았다. 낮에 테헤란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안다. 화려한 낮과 초라한 밤이 같은 하루 안에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간극을 견디는 일에, 자신이 누구보다 익숙하다는 것을.
그 무렵, 잊고 있던 얼굴 하나가 그의 삶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이러브스쿨이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흩어졌던 국민학교 동창들이 인터넷으로 서로를 다시 찾아내던 유행이 온 나라를 휩쓸던 때. 두산국민학교 동창 모임이 구로공단 역 앞의 한 지하 술집에서 열렸다. 지금은 구로디지털단지라 불리는,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가리봉동 그 언저리였다. 열 명 남짓이 모였는데, 다들 학창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이라 그는 놀랐다. 그 자리에 앉아 있자니, 잠시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다만 한 사람만은 달랐다. 김정은이었다. 도수 높은 안경을 벗어 던지고, 어른스러운 화장을 하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늘씬한 여자. 그 시절 햄버거 광고에 나오던 버거소녀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태훈이 누구였는지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하기야 태훈에게도, 교실에 불을 낼 뻔하던 그 문제아를 누구보다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옛 동창과 그 흰 원피스의 여자를 겹쳐 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호기심이 생긴 쪽은 오히려 그녀였다. 거친 동네에서 자란 그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태훈은 키도 크고 외형도 제법 괜찮은 축이었다. 게다가 그 자리에 나온 남자들 중 대학에 진학한 것은 그뿐이었고, 무엇보다 그는 그 핫하다는 코엑스몰이 있는 삼성동 테헤란로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었다. 마침 그녀도 그 무렵 유행하던 홈페이지 같은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만든 홈페이지를 보여주겠다며 컴퓨터가 있는 자기 사무실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가까워졌다. 데이트는 자연히 그가 손금처럼 외운 그 지하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TGIF에서, 중앙 푸드코트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었고, 메가박스의 어두운 상영관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았다. 글래디에이터, 공동경비구역 JSA, 엽기적인 그녀, 시월애, 친구,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2000년대 초의 그 영화들을, 두 사람은 그 지하의 극장에서 함께 보았다. 평생 창밖만 내다보던 소년이, 이제 그 환한 도시의 한복판에서 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뒷날 알게 되지만, 김정은 역시 한자리에 오래 머무는 사람은 아니었다. 세종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도, 커피와 홍대 문화가 좋아 한동안 바리스타로 일하고, 아이가 좋아 중앙대학교에서 아동학을 다시 전공했다. 삼성전자에 들어갔다가 대기업의 공기에 적응하지 못해 일 년 만에 나와, 컴퓨터공학과 아동학을 모두 살릴 수 있는, 작은 게임 회사로 옮겨가기도 했다. 한곳에 뿌리내리기보다 끌리는 쪽을 따라 옮겨다니는 사람.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의 떠도는 마음을 한눈에 알아본 두 마리 갈매기였다. 지금은 다만,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보내던 그 시절에도 그에게 환한 한 조각이 있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너져 가는 회사와 곰팡이 핀 지하방 한가운데에서, 그는 흰 원피스를 입은 한 사람과 영화를 보러 다니고 있었다.
Brain Upgrade의 화면을 만드는 일은 태훈에게 맡겨졌다. 정확히는 맡겨졌다기보다, 할 사람이 없어서 떨어진 일이었다.
2000년의 브라우저는 지금처럼 강력하지 않았다. 지메일도 없었고, 에이잭스라는 말도 대중화되기 전이었다. 웹페이지는 문서를 보여주는 것에 가까웠다. 그 안에 운영체제 같은 화면을 넣겠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었다. 개발자 도구가 풍부하던 시대도 아니었다. 그가 가진 것은 브라우저의 소스 보기와 추측과 시행착오뿐이었다. 그는 비슷한 서비스를 열어놓고 소스를 들여다보고, 따라 만들고, 고치고, 다시 실행했다. 베낀다는 말이 부끄럽지만 정확했다. 그는 미래를 창조했다기보다, 미래처럼 보이는 것을 필사적으로 흉내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흉내가 조금씩 작동하기 시작했다. 창이 움직였고, 아이콘이 반응했고, 메뉴가 열렸다. 왜 되는지 모르는 순간도 많았지만, 어쨌든 되었다. 개발이라는 일의 초입에서 사람을 중독시키는 것이 바로 그 감각이다. 이해보다 작동이 먼저 온다. 작동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고 싶어진다. 종이에 부루마불을 그리던 아이가, 이제 화면 위에 움직이는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그는 그 감각에 깊이 빠져들었다.
회사는 한동안 빠르게 컸다. 중앙정보기술이라는 이름은 센트럴에스티라는 더 세련된 영문식 이름으로 바뀌었고, 사무실은 넓어졌고, 사람은 늘었다. 투자 이야기가 돌았고, 회의실 벽에는 계획이 가득했고, 사람들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등록금을 걱정하던 학생이 어느새 연봉이 몇 배 오른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회사가 커지는 것과 사업이 단단해지는 것은 다른 일이다. Brain Upgrade는 끝내 시장에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 대신 새로운 비전이 계속 생겨났다. 새로운 플랫폼, 새로운 서비스, 새로운 미래. 어른들의 말은 점점 거창해졌지만, 정작 고객이 쓰는 제품은 많지 않았다. 스물두 살의 태훈은 그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명함은 번듯했고, 테헤란로의 불빛은 여전히 밝았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월급이 늦어졌다. 처음에는 며칠이었다. 투자금 집행 일정 때문이라 했고,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다음 달에도, 그다음 달에도 월급은 나오지 않았다. 사무실에서는 여전히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복도에서는 돈 이야기가 돌았다. 누가 나갔다더라, 투자가 안 됐다더라. 어느 순간 빈자리가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닷컴버블의 빛이 꺼져가고 있었다. 빛이 강할수록 꺼진 뒤의 어둠은 짙었다.
태훈에게 임금 체불은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였다. 저축할 여유는 아예 없었다. 월급이 끊긴다는 것은 곧 차비와 점심값이 끊긴다는 뜻이었다. 어린이대공원 앞 능동의 자취방에서 역삼동 회사까지 걸어간 날도 있었다. 남부민동에서 학교까지 걷던 그 다리가,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그를 걷게 했다. 점심시간이면 사람들은 식당으로 향했고, 그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자리에 남았다. 배가 고팠지만 사 먹을 돈이 없었다.
그때마다 정원희가 다가왔다. 태훈씨, 밥 먹으러 가요. 괜찮다고, 배가 안 고프다고 해도 정원희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냥 같이 가자고 했다. 삼각김밥, 컵라면, 김밥 한 줄. 돌이켜보면 그는 정원희에게 셀 수 없이 많은 밥을 얻어먹었다. 정원희는 기술을 알려줄 때도, 밥을 사줄 때도 늘 당연하다는 듯 행동했다. 그래서 더 고마웠다. 가난한 시절에 받은 밥은,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신뢰로 오래 남는다.
그러나 좋은 사람만으로 회사가 살아남지는 않는다. 어느 아침, 신문에서 작은 기사를 보았다. 모바일 인터넷 부문 수상작, 친구찾기 서비스, 어헤드모바일. 당시 모바일 인터넷은 웹 다음의 시대처럼 보였다. 휴대폰 안으로 들어가는 인터넷. 그는 그 기사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처음 듣는 회사였지만, 이상하게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지는 탑 안에서,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문 앞에 서 있었다. 센트럴에스티는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첫 월급, 첫 성공, 첫 자신감, 그리고 서울. 무엇보다 정원희라는 거울을 주었다. 이제 그 탑은 기울고 있었지만, 그는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 한마디를 품고 떠났다. 자바스크립트 잘 짜시네요. 그 작은 허가증 한 장을 들고, 그는 다음 문을 두드리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