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바크에 합류한 첫날, 그는 사무실에 있지 않았다. 뉴욕에 있었다.
첫 일정은 흔한 온보딩이 아니었다. 나스닥 빌딩에서 열린 상장 기념 만찬이었다. 새 회사의 이메일 계정을 받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그는 창업자들과 투자자들과 임직원들 사이에 끼어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 바깥 타임스퀘어의 거대한 전광판에는, 그가 이제 막 합류한 회사의 로고가 환하게 떠 있었다. 입사 첫날 보게 된 풍경이 회사의 기업공개라니. 부산 달동네에서 차비가 없어 도시를 걷던 소년이, 세계 자본의 심장인 뉴욕 한복판에서, 자기가 사흘 전 들어간 회사의 로고가 마천루를 밝히는 것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생은 종종,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그 화려한 첫날의 불빛 속에는, 그가 미처 읽지 못한 그림자도 함께 있었다. 전광판의 로고가 밝을수록, 그 회사가 짊어진 기대도 그만큼 무거웠다. 상장이란 축포인 동시에, 이제부터 매 분기 숫자로 증명하라는 계약서이기도 했으니까. 다만 그날 밤의 그는, 아직 그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보았더라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그를 그곳으로 데려간 것은 전광판의 불빛이 아니라, 풀고 싶은 문제였으니까.
엠바크는 그가 거쳐온 자율주행 회사들과 조금 달랐다. 당시 대부분의 회사가 운전자를 없애겠다는 쪽에 가까웠다면, 엠바크는 기존 물류 업계와 함께 성장하려 했다. 트럭 운전사를 적으로 두지 않고, 그 부담을 줄이고 네트워크 전체를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버 프레이트에서 화물 생태계의 복잡함을 들여다본 그에게는, 그 철학이 옳게 느껴졌다. 수많은 운송사와 브로커와 운전자와 화주와 창고, 그리고 끝없는 예외 상황들. 그 생태계를 무시한 채 기술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그는 믿지 않았다. 엠바크는 적어도 현실을 이해하려 애쓰는 회사처럼 보였다.
조직이 작다는 점도 좋았다. 직원이 삼백 명도 되지 않아,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우산 아래 있던 죽스와는 정반대였다. 회의실에서 나온 이야기가 며칠 뒤 실제 제품이 되곤 했고, 좋은 아이디어 앞에서는 그 사람의 직급보다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했다. 오랜만에 그는 스타트업 특유의 에너지를 다시 느꼈다. 위험은 더 컸지만, 그만큼 자신이 만드는 것이 회사의 방향에 직접 가닿는다는 감각도 컸다.
그가 맡은 것은 차량 데이터 플랫폼과 데이터 인프라였다. 자율주행 트럭이 도로를 달리면, 센서 데이터와 주행 기록과 모델 학습 데이터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문제는, 그 트럭이 얌전한 데이터센터 안에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트럭은 도로 위에 있었다. 사막을 지나고 산을 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휴대전화 신호는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했고, 연결 상태는 한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데이터센터 안에서라면 당연한 일들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트럭 위에서는 하나도 당연하지 않았다. 신호가 끊긴 사이 쌓인 수 테라바이트의 데이터를 어떻게 잃지 않고 모을 것인가. 연결이 잠깐 돌아온 그 짧은 틈에 무엇을 먼저 올려보낼 것인가. 무엇을 버려도 되고, 무엇은 절대 잃어서는 안 되는가. 그것은 기술적 문제인 동시에 운영의 문제였다. 그는 그 불안정한 현실 위에, 끝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세워야 했다.
그는 그런 문제를 좋아했다. 현실은 지저분하고, 그 위에 세우는 시스템은 단단해야 하는 문제. 화이트보드 위의 우아한 이론이 아니라, 진흙탕 같은 현실을 끝까지 감당해내는 공학. 시카고의 아수라장 같은 운영 현장에서 “우리가 풀 문제는 이것”이라 깨달았듯, 그는 또 한 번 가장 지저분한 현실의 한복판에서 가장 단단한 무언가를 짓고 있었다. 불안정한 연결 위에서 트럭의 데이터를 길어 올리는 그 일이, 그의 손끝에서 하나의 발명이 되었다.
그 문제를 풀어가며, 그는 처음으로 미국에서 특허를 냈다.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11823505번. 셀룰러 연결 위에서 트럭 데이터를 전송하는 주석 프레임워크였다.
그런데 이 특허에는, 그를 가장 뭉클하게 한 사연이 하나 있다. 그 특허는 그가 회사를 떠난 뒤에야 정식으로 접수되었다. 절차상 그의 이름은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떠난 사람이니까, 빼도 그만이었다. 그런데 남은 동료들이, 그를 발명자 명단에 올렸다. 그가 그 일의 뼈대를 세운 사람임을 알기에, 존경의 뜻을 담아 그의 이름을 적어 넣은 것이다.
생각하면 묘하고도 따뜻한 일이다. 한때 구글의 면접관에게 “눈빛이 없다”는 말을 듣고, 네이버에서는 결백을 주장해도 보안요원에게 쫓겨나던 사람. 회사로부터 그토록 자주 외면받던 그가, 이번에는 떠난 뒤에도 동료들의 손에 의해 그 이름이 남겨졌다. 그가 평생 믿어온 명제, 회사는 사람을 버려도 사람은 사람을 기억한다는 그 명제가, 미국 특허 문서의 발명자 칸에 조용히 새겨진 셈이었다. 정작 본인은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이름은 누군가의 존경 속에 영원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엠바크가 올라탄 파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율주행 업계는 뜨거웠지만, 기술의 상용화는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스팩을 통한 우회상장 열풍이 한 시절을 휩쓸었지만, 금리가 오르고 투자 환경이 싸늘해지자 그 열기는 거짓말처럼 빠르게 식었다. 밀물처럼 밀려들던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투자자들은 다시 냉정하게 숫자를 묻기 시작했다. 언제 돈을 버는가. 언제 상용화되는가. 언제 흑자가 나는가. 모두 옳은 질문이었다. 다만 대부분의 자율주행 회사들은, 아직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밝히던 그 불빛이, 그렇게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것은 엠바크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때 업계의 스타로 불리던 회사들이 갑자기 생존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투심플을 비롯한 여러 자율주행 스타트업이 감원과 구조조정을 거듭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기술만으로는 회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냉정한 진실을, 실리콘밸리는 그에게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였다. 센트럴에스티가 무너지던 날에도, 컨테이전트에서 종이상자를 받던 날에도 배웠던 그 진실. 회사는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놀랍지는 않았다. 다만 안타까웠다. 엠바크에는 좋은 사람이 많았고, 의미 있는 기술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태훈도 다음을 고민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막막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천장을 바라보며 밤을 새웠을 그가, 이번에는 담담했다. 그는 죽스에서 좋은 성과를 냈고, 좋은 관계를 남기고 떠난 사람이었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은 의외로 간단했다. 죽스 시절의 옛 디렉터와 한마디를 나누었을 뿐인데, 별다른 절차도 없이 다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력서도, 코딩 면접도, 시스템 디자인도 필요 없었다. 그를 아는 한 사람의 한마디면 충분했다.
커리어가 길어진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력서의 줄들보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더 중요해지는 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남았는지, 동료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일. 0점짜리 시험지를 내밀고도 합격하던 그 청년은, 이제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를 겪어본 사람들의 기억이, 세상 어떤 시험지보다 그를 정확하게 증명했으니까.
그렇게 그는 다시 죽스로 돌아간다. 떠날 때와 같은 신입이 아니라, 이미 한 번 증명한 사람으로. 그리고 그가 돌아간 그 무렵, 그의 집에서는 또 하나의 작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빛이라 이름 붙인 그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방을 메고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