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그는 네오플이라는 회사의 존재조차 몰랐다.
넥슨이 최근에 인수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는 넥슨 임원과 면접을 보며 비로소 전해 들었다. 함께 일하게 될 조종실의 실장은 열정이 넘쳐 보였고, 팀원들은 밝고 즐거워 보였다. 전반적으로 젊고 활기찬 분위기의 회사였다. 주력 게임이던 던전앤파이터나 당시 개발 중이던 사이퍼즈 자체에 큰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좋아 보였으므로 그는 즐겁게 일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안락하지만 메말라 가던 블리자드를 나와, 그는 다시 활기 쪽을 택했다.
조종실은 주로 PHP를 썼는데, 네이버에서 PHP가 자바로 옮겨간 그 원인을 고스란히 안고 있었다. 그는 개선을 염두에 두었다. 던전앤파이터의 캐릭터 검색 기능을, 블리자드의 배틀넷 전투정보실과 비슷한 형태로 아파치 솔라를 써서 구현했다. 중앙정보기술과 네이버에서 익힌 검색엔진 지식이 여기서 또 한 번 제 몫을 했다. 흘려보낸 줄 알았던 것들이, 늘 엉뚱한 자리에서 그를 도왔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인 것은 글로벌 규모의 액션 포털 설계였다. 넥슨과 네오플의 회원 기반을 발판으로, 독립 액션 게임 개발사들에 퍼블리싱 플랫폼을 제공하자는 구상. 지금의 게임 플랫폼으로서의 페이스북과 비슷한 그림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그 설계에 쏟아부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검색과 부동산과 블로그와 배틀넷을 거쳐온 한 엔지니어가, 이제 한 산업의 판을 짜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공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넥슨은 네오플을 인수하면서 독립 경영을 보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있던 무렵부터 넥슨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네오플의 오랜 구성원들이 하나둘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의 공기가 붕 떴다. 한때 밝고 즐거워 보이던 사람들의 표정에 그늘이 졌고, 많은 이들이 이미 다른 회사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그가 활기를 보고 들어온 그 회사의 활기가, 그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또 한 번 익숙한 풍경 앞에 서 있었다. 센트럴에스티가 무너지던 날, 다음의 미디어본부를 떠나던 날, 네이버가 그를 뱉어내던 날. 회사라는 것은 늘 그렇게, 영원할 것처럼 굴다가도 어느 순간 공기부터 빠져나갔다. 그는 회사에 충성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정확히는,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가 거쳐온 회사들은 하나같이, 한 사람이 평생을 걸 만큼 그를 오래 품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일찌감치 다른 것을 믿게 되었다.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조직의 간판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만난 얼굴들을.
바로 그 무렵,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이스 김. 미국에서 사업을 하며 실리콘밸리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이었다. 한국에 들어올 일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고, 두 사람은 청담동의 한 커피숍에서 마주 앉았다.
그 자리에서 무슨 거창한 사업 제안이 오간 것은 아니었다. 조이스가 미국을 꿈처럼 부풀려 말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비자와 생활비와 문화 차이와 실패 가능성까지, 그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 현실적인 이야기가 더 매력적으로 들렸다. 처음으로 미국이 막연한 꿈이 아니라 실제 선택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진 것이 실리콘밸리를 향한 태훈 자신의 오랜 동경이었다. 구글이 눈빛이 없다며 돌려보낸 그날 이후로, 블리자드의 어바인 본사 문이 닫히던 날 이후로, 그의 안에서 한 번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던 그 물음. 한국 밖은 어떨까. 태평양 건너의 가장 공평한 물은 어떤 곳일까. 그 오래된 동경이, 한 잔의 커피 앞에서 마침내 결심으로 굳었다.
정원희를 미국으로 실어 나른 것이 회사라는 거대한 조류였다면, 태훈에게는 그런 배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배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어야 했다. 청담동 커피숍에서 마주 앉은 조이스 김이, 그 작은 배가 되어준 셈이다. 평생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믿어온 그에게, 태평양을 건널 배 또한 끝내 한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6개월 남짓의 네오플 생활을 끝으로, 그는 한국에서의 프로그래머 경력을 매듭짓는다.
돌아보면 한국에서의 십 년이었다. 2000년 봄, 차비도 없어 옆집에서 돈을 빌려 부산벤처빌딩 앞에 서 있던 스물한 살의 청년이, 2010년의 문턱에서 태평양을 건널 채비를 하는 서른한 살의 엔지니어가 되어 있었다. 그 십 년 동안 그는 센트럴에스티에서 가장 낮은 자리를 배웠고, 어헤드모바일에서 처음으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었고, 다음에서 0점을 맞고도 살아남았고, 네이버에서 수십억의 실패를 겪었고, 블리자드에서 가장 공평한 물의 뒤편을 보았고, 네오플에서 한 산업의 판을 그렸다. 무너지고, 떠밀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한 십 년이었다.
그 십 년이 그에게 가르친 가장 깊은 진실은 단순했다. 회사는 그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 간판은 빛나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사람은, 진짜 사람은 남는다는 것. 평일에도 부산에서 올라와 어머니의 빈소를 지켜준 친구들처럼, 자바스크립트를 잘 짠다고 말해준 정원희처럼, 그리고 이제 청담동 커피숍에서 그에게 태평양 건너의 길을 열어준 조이스 김처럼.
미국으로 건너가겠다는 결심을 전했을 때, 김정은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 한 번 가보자. 평생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끌리는 쪽을 따라 옮겨다니던 그녀였다. 그 떠도는 마음이, 남편의 무모한 항해에 가장 먼저 돛을 달아준 것이다. 두 마리의 갈매기는, 그렇게 함께 가장 먼 바다를 향하기로 했다.
그는 짐을 쌌다. 마산에서 가리봉동으로, 가리봉동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제주로, 다시 서울로. 평생을 떠돌아온 그였지만, 이번 이사는 차원이 달랐다. 이번에 그가 건너는 것은 도시와 도시 사이가 아니라, 한 대륙과 다른 대륙 사이였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말도 서툴고, 아는 이도 거의 없는 땅. 그러나 그곳은 그가 어린 시절 오락실 화면 너머로 꿈꾸던 세계, 게임을 만들고 미래를 짓는 사람들의 본고장이었다.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소년이, 이제 태평양을 건너려 하고 있었다. 죽지 못해 살아온 날들의 끝에서, 그는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곳으로 떠나고 있었다. 갈매기는 마침내, 자신이 태어난 항구를 떠나 가장 먼 바다를 향해 날갯짓을 시작했다.
2부 「테헤란」이 그렇게 끝난다. 그리고 다음 장부터, 그의 이야기는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땅에서 새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