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스는 그가 다녔던 어떤 회사와도 달랐다. 사용자가 없었다. 매출도 없었다. 세상에 나온 제품도 아직 없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치열하게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게 이상했다. 무엇으로 성공을 판단하는 걸까. 우버에서는 분명했다. 고객이 더 빨리 이동하는지, 운영 효율이 좋아지는지를 보면 됐다. 숫자가 곧 답이었다. 그런데 죽스에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고객을 위해, 아직 출시되지 않은 서비스를 위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를 막으려 일하고 있었다. 손에 잡히는 사용자도, 매출 그래프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향해 그토록 몰두하는 것일까.
답은 시간에 있었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현재의 제품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였다. 삼성 연구소에서 5년에서 10년 뒤의 씨앗을 심던 그 감각이, 여기서 한층 더 멀고 거대한 형태로 돌아와 있었다. 다만 그때보다 훨씬 절박하고, 훨씬 구체적이었다. 운전자 없는 차가 사람을 태우고 도시를 달리는 그날. 그 하루를 위해, 아직 오지 않은 그 하루를 위해, 수백 명이 매일을 갈아 넣고 있었다.
그가 맡은 시뮬레이션은, 바로 그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는 일이었다.
입사하고 처음 몇 달은 낯선 용어의 연속이었다. 퍼셉션, 프리딕션, 플래닝, 시뮬레이션. 회의에 들어가면 처음 듣는 단어가 끝없이 쏟아졌다. 그런데 한 가지가 그를 놀라게 했다. 자율주행 회사라면 자동차 엔지니어와 인공지능 연구자가 대부분일 거라 여겼는데, 정작 회사 전체를 움직이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다. 데이터 엔지니어, 플랫폼 엔지니어, 백엔드 엔지니어, 인프라 엔지니어. 알고 보니 자율주행차란 결국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공장이었다. 차가 도로를 달리면 카메라와 레이더와 라이다와 지피에스, 수많은 센서가 동시에 데이터를 토해냈고, 그 데이터는 다시 학습과 검증으로 흘러갔다. 한 번의 주행이 끝나면 또 다른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 규모는 그가 그때껏 경험한 어떤 서비스보다도 컸다. 인공지능의 문외한이라 스스로 거리를 두던 그가, 막상 들어와 보니 가장 익숙한 물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실제 차량이 아니라 가상의 차량, 실제 도로가 아니라 가상의 도로, 실제 사고가 아니라 가상의 사고.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무수한 일을 컴퓨터 안으로 끌어와 미리 겪어보는 것이다. 자율주행에는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었다. 차를 안전하게 만들려면 위험한 상황을 수없이 겪어봐야 하는데, 그 위험을 진짜 도로에서 겪을 수는 없다. 사람이 갑자기 뛰어드는 순간, 빗길에 미끄러지는 순간, 신호가 뒤엉킨 교차로. 그 아찔한 장면들을 실제로 부딪쳐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 세계를 통째로 컴퓨터 안에 짓는다. 차는 그 가상의 도시에서 매일 수백만 번을 달리고, 수백만 번을 부서지며, 그 실패에서 배운다.
그 일은 묘하게도 그의 평생과 닮아 있었다. 시뮬레이션이란 결국, 충돌하지 않고 충돌을 배우는 기술이었다. 동전 하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던 부산의 오락실. 아무리 죽어도 현실의 목숨은 멀쩡하던,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던 그 공평한 세계. 그곳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운 한 소년이, 수십 년 뒤 자동차가 안전하게 실패하며 배우는 세계를 직접 짓고 있었다. 한 번의 실수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도로 위의 차를, 컴퓨터 안에서는 마음껏 부서지게 만드는 일. 실패가 곧 자산이 되는 그 세계를 짓는 데, 그만큼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었을 것이다.
처음에 그는 더 많이, 더 빠르게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실행은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정작 중요한 것은 학습이었다. 수천 번의 실험을 돌린들, 그중 무엇이 좋아졌고 무엇이 나빠졌는지, 어떤 변화가 진짜 성능 향상으로 이어졌는지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차를 백만 번 달리게 하는 것보다, 그 백만 번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핵심이었다. 그래서 그는 메트릭 백엔드를 천 배 규모로 다시 설계했다. 시뮬레이션을 수백만 번 돌리면 그만큼 어마어마한 측정값이 쏟아진다. 차가 얼마나 부드럽게 멈췄는지, 보행자와 얼마나 떨어져 지나갔는지, 제동이 몇 밀리초 늦었는지. 그 수치들을 저장하고 빠르게 꺼내 분석할 수 있어야, 엔지니어들이 차를 개선할 수 있었다. 그는 데이터 보존 정책을 새로 세우고 여러 겹의 색인 구조를 다시 짜서, 그 백엔드가 천 배의 규모를 견디게 만들었다.
킥스아이에서 살아 있는 게임 데이터를 길들이고 삼성에서 천 대의 노드 위에 데이터의 도시를 짓던 그 손이, 이제 자율주행차가 토해내는 천문학적 데이터를 길들이고 있었다. 도구와 무대는 매번 바뀌었지만, 그가 하는 일의 본질은 한결같았다. 감당할 수 없이 쏟아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게 만드는 일.
한 가지 묘한 일이 있었다. 그는 입사 첫날부터 재택근무였다.
칼과의 그 마지막 일대일조차 화상으로 이뤄졌고, 모든 회의는 줌으로, 모든 대화는 슬랙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멈추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갑자기 집에 갇혀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전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그러나 태훈에게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었다. 우버에 다니면서 잦은 재택근무 하던 것과 다를 게 없이, 오늘도 똑같이 하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세상이, 그가 이미 일하던 방식으로 옮겨오는 것 같았다. 평생 남보다 늦게 도착하던 사람이, 이번만은 세상보다 한발 앞서 그 자리에 가 있었던 셈이다. 미래를 만드는 회사에서, 그는 일하는 방식마저 한발 앞선 미래에 살고 있었다.
조직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고, 시뮬레이션 플랫폼은 무럭무럭 자랐다. 칼의 빈자리에서 휘청이던 팀이, 어느새 회사의 미래를 떠받치는 단단한 기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소식이 전해졌다. 아마존이 죽스를 인수한다는 것이었다. 사용자도 매출도 출시된 제품도 없던 그 회사가,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기업의 날개 아래로 들어가, 미래를 향한 긴 활주로를 새로 얻은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들던 사람들에게, 그 제품을 끝내 완성할 시간과 자본이 주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품에 안긴다는 것이 늘 축복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곧 알았다. 황금으로 된 수갑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