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깊고 조용한 물에서 다음 물살을 그리워하던 그를, 옐프가 불렀다.
엄밀히 말하면 옐프가 부른 것이 아니라, 그가 옐프를 발견했다. 클라우드 연구소는 객관적으로 좋은 직장이었다. 몇 년 전의 그라면 평생 다녀도 좋겠다고 여겼을 곳이다. 그런데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허전해지고 있었다. 그가 좋아한 것은 기술이었지만, 더 좋아한 것은 제품이었다. 사용자가 보이는 일, 실제 트래픽이 흐르는 시스템, 누군가의 손에서 매일 쓰이는 서비스. 연구소에서도 제품을 만들었지만, 그곳에서 사용자는 끝내 멀리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바깥세상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거의 매주 기술 밋업이 열렸고, 그는 그런 자리를 좋아했다. 어느 날 그는 옐프가 주최하는 엔지니어링 밋업에 갔다. 옐프는 이미 유명한 상장 기업이었고, 수많은 사람이 매일 쓰는 서비스였다. 그날 옐프의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이 만든 시스템을 이야기했다. 수백만 명이 쓰는 플랫폼,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서비스, 실제 고객의 손에 닿는 기능들. 그 이야기를 듣는데,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이런 걸 다시 해보고 싶다. 비슷한 무렵 베이 에어리어 한인 모임에서도 옐프에서 일하던 재스퍼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고, 조직 문화와 제품 개발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음은 점점 한쪽으로 기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연구를 제품으로 바꾸는 일도 재미있지만, 처음부터 제품을 만드는 일은 어떨까. 사용자와 더 가까운 곳에서 일하면 어떨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다시 플랫폼이 그리웠다. 검색, 카페, 게임, 데이터. 눈에 보이는 기능보다 그것을 떠받치는 기반 시스템이 늘 더 흥미로웠던 그는, 옐프 플랫폼 팀에 지원했다. 특정 기술 전문가가 아니라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자리라는 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웹 개발자였다가 검색 엔지니어였다가 데이터 플랫폼 엔지니어가 된, 새 문제가 생기면 배워서 풀어온 그에게 꼭 맞는 자리였다. 마침 영주권이 나와 비자의 사슬에서 막 풀려난 참이었다. 한 회사에 매여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로이 고른 그 첫 선택을, 그는 옐프에 걸었다. 어떤 회사에서 일하느냐보다, 어떤 문제를 푸느냐가 더 중요해져 있었다.
그가 속한 플랫폼 팀은 화면에 바로 보이는 기능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 여러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그 아래의 기반을 떠받치는 곳이었다. 평생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온 그에게, 가장 아래에서 전체를 떠받치는 그 자리는 묘하게 잘 맞았다. 그는 그곳에서 다시 제품과 사용자 가까이에 있다는 감각을 되찾았다. 삼성에서 잠시 멀어졌던 그 감각, 작동하는 것을 만들어 누군가의 손에 가닿게 하는 그 감각을.
옐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사람들의 젊음이었다.
동료들은 생각보다 어렸다. 어떤 친구들은 그보다 열 살 가까이 어렸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그가 영화 쇼생크 탈출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무도 알지 못했다. 처음에 그는 농담인 줄 알았다. 정말, 하고 그가 되물었다. 그 유명한 영화를 모른다고. 그러나 농담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 영화는 태어나기 전이거나 너무 어릴 적의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다 함께 그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 자리는 묘했다. 누군가에게는 고전 명작을 처음 소개받는 시간이었고, 태훈에게는 자신이 어느새 세대 차이를 실감하는 나이가 되었음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소년. 죽지 못해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 아이가, 이제 자기보다 한참 어린 동료들에게 옛날 영화를 소개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 자체가, 조용한 기적이었다. 그가 만약 스무 살의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면, 쇼생크 탈출을 모르는 젊은 동료들도, 함께 본 그 영화도, 태평양 건너의 그 점심시간도,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살아남았기에 나이를 먹었고, 나이를 먹었기에 세대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세대 차이라는 것조차, 살아남은 자에게만 허락되는 사치였다.
그는 옐프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그러나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그곳에서 한 가지를 보았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문화와, 자신이 짊어지고 온 한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는 모습이었다. 회사에는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았다. 동료들은 케이팝을 이야기했고, 한국 드라마를 이야기했고, 한국 음식을 이야기했다. 몇몇은 단체로 한국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부산에서 자란 그가, 미국 백인 동료들이 부산 여행 계획을 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웃던 일을, 그는 오래 기억한다.
어느 날은 싸이의 신곡이 발표되었다. 누군가 대회의실의 큰 스크린을 켰고, 점심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리고 다 함께 그 뮤직비디오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 노래가 미국 회사의 회의실 스크린에서, 미국 동료들의 환호 속에 공개되는 그 풍경.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장면이었다. 그 순간 그는 숨피 시절을 떠올렸다. 직원 넷이서 한류 콘텐츠를 서비스하던 그 작은 회사. 솔직히 그때는 몰랐다. 이 문화가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자신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만지던 그 한류라는 것이, 언젠가 태평양 건너 미국 회사의 회의실을 가득 채우게 될 줄은. 회식은 자연스럽게 한식당으로 갔고, 소주를 마시는 모임도 있었다. 누군가는 불고기를, 누군가는 김치찌개를 좋아했다. 예전에 그는 미국 문화에 적응하려 애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반대가 되어 있었다. 미국 친구들이 한국 문화를 배우고 있었다.
어린 미국 동료들 사이에서 쇼생크 탈출을 이야기하고, 싸이의 뮤직비디오를 함께 보는 한국 출신의 엔지니어. 그 풍경 자체가 하나의 작은 용광로였다. 삼성에서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오가며 품었던 그 물음, 두 세계는 정말 다른가, 그 사이의 사람은 어디에 속하는가 하는 물음이, 옐프의 점심 식탁에서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그 둘은 그렇게 멀지 않은줄도 몰랐다. 그 사이를 오가는 사람이야말로,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는줄도 몰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애런이 먼저 가 있던 회사. 마켓 스트리트 555번지에 있는 회사. 우버였다.
이 책의 첫 장면, 그가 가장 큰 실패를 묻는 질문 앞에 앉아 있던 바로 그 면접실이, 이제 멀지 않았다. 차비가 없어 부산의 도시를 끝없이 걷던 소년이, 이제 샌프란시스코의 마켓 스트리트를 제집처럼 오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의 한 건물에서, 그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규모의 세계로 데려갈 면접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