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봄, 먼저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놀라지 말고 들으라고 했다. 그 한마디 뒤에 무슨 말이 이어졌는지는, 너무 놀란 탓에 지금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곧이어 광명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잠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라는 단어가, 오래 쓰지 않아 녹슨 열쇠처럼 가슴 어딘가에서 헛돌았다. 어머니는 그가 국민학교 6학년이던 무렵 곁을 떠났고, 그 뒤로 소식이 끊긴 사람이었다.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에게 어머니는 부재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런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집 밖에 놓인 세탁기 앞이었다. 떠나기 전, 어머니는 그 세탁기 수조 안에 그가 좋아하는 군것질거리를 잔뜩 넣어두고 갔다. 마른 오징어, 감자깡 같은 것들.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슬펐지만, 어린 그는 곧 돌아오려니 했고, 무엇보다 그 작은 간식들에 마음이 들떴다. 엄마가 떠난 날, 과자 몇 봉지에 기뻐했다는 것. 그 사실이 두고두고 그를 후회하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살가운 사람이 아니었다. 다정한 말보다 잔소리와 꾸지람이 많았다. 그런데 떠나고 나니, 그 잔소리마저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린 시절의 그는 어머니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다. 왜 우리를 두고 갔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스스로 가난과 생존의 한복판을 통과해 온 뒤로, 그는 조금씩 다른 생각을 했다. 어머니도 살아야 했던 것이라고. 시간을 조립하던 그 작은 작업대에서, 가난과 불화에 떠밀려 끝내 집 밖으로 걸어 나가야 했던 한 여자의 사정을, 그는 다 알 수는 없어도 어렴풋이 헤아리게 되었다. 미워하기에는, 그 자신이 너무 멀리까지 떠밀려 와본 사람이었다.
장례식에 온 외가 쪽 친척에게서, 그는 어머니의 마지막 세월을 전해 들었다.
어머니는 서울 개봉동에서 식당을 했다고 한다. 식당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끝내 자기 가게를 가지게 되었다고. 그 가게의 이름은 마산아구찜이었다.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의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무너졌다. 마산. 어머니가 태어난 도시이자, 어머니가 그를 낳은 도시. 두 핏줄이 만나 한 아이가 세상에 온 그 항구의 이름을, 어머니는 서울 변두리 식당의 간판에 걸어두고 살았던 것이다. 평생을 떠돌며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한 여자가, 마지막에 붙잡은 이름이 고향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고향은, 자기 아들이 태어난 자리이기도 했다는 것. 어머니는 그 간판을 올려다볼 때마다, 두고 온 아이의 이름을 한 번쯤 속으로 불러보았을 것이다.
친척은 한 가지를 더 전했다. 어머니가 다시 아들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었다. 식당을 일구고, 살림을 추스르고, 이제는 두고 온 자식을 찾아 나서려던 참이었다고. 그러나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떠난 것이 영영의 버림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그 뒤늦은 사실은, 위로가 되기에는 너무 늦었고, 슬픔이 되기에는 너무 아렸다. 어머니와 함께 보던 드라마의 결말을 끝내 보지 못했던 아이는, 이제 어머니라는 사람의 결말마저, 다 끝난 뒤에야 전해 들었다.
장례는 광명의 한 병원에서 치러졌다.
하필 그 무렵, 온 나라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2002년의 월드컵이었다. 거리는 붉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뒤덮였고, 시청 앞과 광화문에는 수십만, 수백만이 모여 한목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대한민국. 같은 박자의 손뼉이 도시의 밤을 흔들었고, 텔레비전에서도 거리에서도 술집에서도, 어디를 가나 그 함성이 따라왔다. 온 국민이 하나의 기쁨으로 묶여 있던, 다시 오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러나 태훈은 그 축제의 바깥에 있었다. 모두가 환호하는 동안, 그는 어머니의 빈소를 지켰다. 거리의 함성이 클수록, 그의 슬픔은 더 외롭게 도드라졌다. 온 세상이 기뻐 소리치는데 혼자만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는 그해 여름에 알았다. 함성과 응원의 물결은 그의 슬픔을 덮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 슬픔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그려냈다. 그는 그해의 월드컵을 끝내 즐기지 못했다. 그에게 2002년의 그 붉은 여름은, 환희가 아니라 상실의 색으로 남았다.
그 빈소에는, 슬픔만 모여든 것이 아니었다.
수년간 연락조차 닿지 않던 큰고모가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태훈은 슬픔에 잠겨 그 등장을 깊이 신경 쓰지 못했다. 그러나 고모의 눈은 빈소가 아니라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어머니가 평생을 떠돌다 마지막에 일군 그 가게, 마산아구찜이었다. 권리금과 보증금만 해도 적지 않은 돈이었다.
한참 뒤에야 그는 전말을 알았다. 아버지가, 막 사는 고모에게 기회를 준다며 그 가게를 넘겨준 것이다. 그러나 고모는 얼마 못 가 장사를 말아먹었다. 어머니가 십수 년을 떠돌며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간신히 일군 그 한 칸이, 그렇게 허망하게 흩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보험금 같은 것도 있었을 터인데, 그 행방을 그는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이 남긴 것들은, 정작 어머니가 그토록 다시 찾으려 했다는 아들의 손에는 한 줌도 닿지 않았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된, 더 아픈 사실도 있었다. 어머니가 그동안 그에게 매달 용돈을 부쳐왔다는 것이었다. 6학년 때 곁을 떠난 뒤로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소식도 끊겼다고 믿었던 그 어머니가, 사실은 매달 아들 앞으로 돈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돈은 그의 손에 한 번도 닿지 않았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이 그의 통장을 쥐고, 그 용돈을 가로채 왔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끊긴 적이 없었는데, 그는 끊긴 줄로만 알고 십 년을 살았다.
가로챈 것은 돈만이 아니었다. 동생은 양쪽을 오가며 말을 옮겼다. 아버지에게는 오빠가 몰래 어머니와 내통한다고 했고, 어머니에게는 오빠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했다. 중학교 때 학교로 찾아온 어머니와 오빠가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는, 있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지어냈다. 그렇게 그는 배은망덕한 자식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그토록 지원했는데 연락 한 번 없던 못된 아들. 친척들 사이에서도,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도 그는 그런 사람으로 굳어졌다.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도,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믿는다.
그는 끝내 그 오해를 풀지 못했다. 풀려 할수록 분란만 커졌다. 그래서 그는 다투는 대신, 동생에게서 조용히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준 사람과 더 싸우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 그것이 그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평화였다.
이 일들을 겪으며 그는 한 가지를 마음에 새겼다. 피로 묶였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어린 시절 등록금을 구하러 갔다가 차비만 쥐여 돌려보내던 포항의 고모, 일제강점기의 순사였다는 얼굴 모를 외할아버지와 여러 갈래로 갈라진 외가의 내력까지, 그의 핏줄은 한 번도 그를 든든히 받쳐준 적이 없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그에게 안전망이 아니라, 때로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대상에 가까웠다. 슬픈 깨달음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일찍 받아들였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그는 피로 묶이지 않은 또 다른 가족을 보았다.
피붙이가 가게를 셈하는 동안, 그 빈소를 끝까지 지켜준 것은 부산의 과 친구들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친구들은 평일이고 수업이 잔뜩있음에도 불구하고 먼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러고는 장례가 끝날 때까지, 모든 순간을 그의 곁에서 함께했다. 밤을 새우고, 손님을 맞고, 말없이 옆에 앉아 있어 주었다. 그는 그 친구들에게 진 빚을, 지금까지도 마음에 품고 있다.
언젠가 그는 가난이 자신에게 준 가장 값진 것이 진짜 친구라고 적은 적이 있다. 물질과 배경을 다 걷어내면 사람에게 남는 것은 내면의 매력뿐이고, 그것을 보고 다가오는 친구를 둔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도 그런 매력이 있다는 뜻이라고. 깡소주와 새우깡으로 쌓은 그 우정이, 그가 가장 외롭던 자리에서 이렇게 증명되었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평일에 기차를 타고 올라와, 남의 슬픔 곁에서 며칠 밤을 함께 새워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그는 그 검은 며칠을 무너지지 않고 통과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보내고 난 뒤, 그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상실은 그를 부산으로 돌아가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못났고 얼마나 자주 포기하려 했는지 다 아는 사람들, 굳이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 어머니라는 가장 오래된 뿌리 하나가 영영 끊긴 자리에서, 그는 남아 있는 뿌리들이 있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시간을 조립하던 어머니의 시계는 그렇게 멈췄다. 그러나 그 어머니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이었다. 사람은 끝내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곁에 있는 동안, 곁에 있는 사람을 잃지 말라는 것. 배냇골에서 한 번, 그리고 이 빈소에서 또 한 번, 그는 같은 진실을 다른 얼굴로 배우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갚아야 할 빚이라는 진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