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해진 죽스에서 그의 시선이 자꾸 태평양 건너로 향하던 그 무렵, 그를 결정적으로 움직인 것은 회사가 아니라 한 아이였다.
일린이는 학교에 가기 전까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집에서는 한국말만 썼으니까. 처음 미국 학교에 갔을 때는 자기 이름조차 알아듣지 못했고, 알파벳을 몰라 제 이름표도 찾지 못했다.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이들은 금방 배우니까. 실제로 일린이는 금방 배웠다. 너무 금방이어서 문제였다.
어느 날 일린이가 친구와 놀았던 이야기를 하려다 멈칫했다. 아빠, 오늘 친구랑, 하더니 엄, 엄, 하고 한국어 단어를 찾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는 결국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영어가 빠르게 자연스러워지는 만큼, 한국어가 아이에게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식탁 위에 짧은 침묵이 놓였다. 부모는 그 침묵을 오래 보았다.
그것은 그가 평생 풀어온 어떤 기술 문제와도 다른 종류의 문제였다. 빛이라 이름 붙인 아이, 거친 세상 속에서 태양처럼 단단하기를 바랐던 그 아이가, 정작 자기가 누구인지 말할 언어를 잃어가고 있었다. 두 세계를 다 가진 다리로 태어난 아이가, 어느 기슭에도 발을 딛지 못한 채 강 한복판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좋은 엔지니어가 되는 것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절감했다. 「귀향」에서 던졌던 그 질문,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떤 언어로 사랑하고 어떤 문화 속에서 자랄 것인가 하는 물음이, 이번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딸을 통해 그에게 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 쿠팡의 기회가 왔다.
풀필먼트와 운송 시스템. 물류, 운송, 최적화, 플랫폼. 그 단어들을 보는 순간, 그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그가 지난 십여 년간 해온 일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곳에 모여 있었으니까. 우버 프레이트에서 화물의 정산을 자동화하고, 카카오모빌리티에서 2200만의 이동을 설계하고, 죽스와 엠바크에서 자율주행의 데이터를 길들이던 그 모든 경험이, 쿠팡이라는 한 점으로 수렴하는 듯했다. 한국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그 회사는, 로켓배송이라는 마법을 떠받치기 위해 전국에 100개가 넘는 물류 시설을 깔고, 그 거대한 네트워크를 끊임없이 최적화하고 있었다. 그가 평생 사랑해 온, 거대한 규모와 지저분한 현실이 맞물린 바로 그런 문제였다.
게다가 그곳은 한국이었다. 단어를 잃어가는 딸을 모국어의 품으로 데려갈 수 있는 곳. 일과 가족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국행을 고민하며, 그는 조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카오모빌리티 시절 그의 좋은 상사였던 그 사람. 알고 보니 조시는 그 이전에 쿠팡의 기술 리더였고, 쿠팡의 주주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정확한 조언자가 없었다. 조시는 그의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 않았다. 다만 쿠팡이라는 회사의 가능성과, 그 안에서 태훈이 해낼 수 있는 역할에 대해, 묵묵한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었다. 카카오모빌리티에서 갈림길에서 등을 밀어주는 조언자가 된다던 그 인연이, 정확히 이 순간 제 몫을 한 것이다.
그가 쿠팡으로부터 받은 대우는, 외국인 주재원의 것이었다.
한국에서 일하지만 급여는 달러로 받았다. 집을 구하기 전 석 달 가까이는, 석촌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소피텔 호텔에 머물게 해주었다. 짐을 아직 다 풀지 않은 채, 그는 호텔 창가에서 도심 한복판의 그 잔잔한 호수를 내려다보곤 했다. 곧 돌아갈 줄 알고 가방을 풀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정착하러 돌아와 놓고도 또 가방을 풀지 못한 채 임시의 방에 머물고 있었다. 다만 이번의 머뭇거림은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자리 잡을 집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호텔 창밖의 호수는, 바다도 강도 아닌, 어딘가에 고여 잠시 숨을 고르는 물 같았다. 그 자신처럼.
이윽고 그는 집으로 옮겼다. 반포의 아크로리버파크. 회사는 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고급 아파트를 관리비까지 대어 내어주었고, 거대한 사이닝 보너스, 의료보험과 일린이의 외국인학교 학비, 이사비, 해마다 가족이 쓸 왕복 항공권까지 마련해 주었다. 떠날 때는 떠밀리듯 나갔던 그가, 돌아올 때는 회사가 집과 학비와 항공권을 마련해 모셔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밤이면 그는 그 집에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발아래로 반포한강공원이 어둠 속에 길게 누워 있었고, 그 너머 강 건너편에 남산타워가 불을 밝히고 서 있었다. 묘한 느낌이었다. 평생 그가 보아온 것은 자연의 물이었다. 마산 앞바다, 부산 남부민동 언덕 아래 항구,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그런데 지금 그가 내려다보는 것은, 인간이 빚어 올린 도시의 불빛과 그 한복판에 우뚝 선 탑이었다. 강과 공원과 타워가 어우러진 그 야경은, 어딘가 비현실적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야경 앞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이 나오지 않아 받아둔 다라이의 물에 이끼가 끼던 방. 화장실 하나를 쓰러 주인집 식구들의 눈을 지나 남의 마당을 가로지르던 아이. 콩나물 한 줌을 외상으로 달라다 빈손으로 돌아서던 그 골목. 그 모든 가난의 풍경을 통과해 온 사람이, 이제 반포의 통유리 앞에서 강 건너 남산타워의 불빛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리봉동 단칸방에서 이 거실까지, 그 사이에 놓인 것은 거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평생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풍경 앞에서 우쭐하지 않았을 것이다. 잘나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운이 좋았고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죽지 못해 버티다 어찌어찌 흘러왔을 뿐이라고, 그는 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도, 발아래 한강만은 옛날 그 항구의 물처럼 묵묵히, 어둡게 흐르고 있었다.
쿠팡에서 그는, 오래 품어온 한 가지 물음의 답을 얻었다.
한국에서도 실리콘밸리 수준의 엔지니어링이 가능한가. 두 물을 다 헤엄쳐본 그가 늘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던 질문이었다. 한국을 떠날 때 그는 한국의 개발 문화에 절망에 가까운 답답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쿠팡은 달랐다. 시애틀과 서울과 방갈로르와 베이징의 조직이 한 팀처럼 함께 일했고, 수백 개의 서비스와 거대한 물류 네트워크가 맞물려 돌아갔다. 설계 리뷰는 치열했고, 기술적 기대치는 실리콘밸리의 그것 못지않게 높았다. 그가 떠나온 그 한국이 아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글로벌 수준의 엔지니어링이 가능했고, 이미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가 쿠팡에서 푼 가장 어려운 문제의 열쇠는, 뜻밖에도 자율주행에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누군가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고 장바구니를 들여다본다. 지금 주문하면 내일 새벽에 올까. 그 망설임의 시한을 단 몇십 분이라도 뒤로 미루는 일. 별것 아닌 듯 보이지만, 그 몇십 분 뒤에는 전국 수십 개 창고의 재고와 동선이 한꺼번에 얽혀 있었다. 마감을 늦추는 결정 하나가 잘못되면, 그 혼란은 전국의 새벽으로 번질 터였다. 그렇다고 진짜 물류망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실험해볼 수도 없었다.
그때 그는 죽스를 떠올렸다. 진짜 도로에서 사고를 낼 수 없어 가상의 도시에서 차를 수백만 번 달리게 하던 그 방식. 그는 똑같이 했다. 쿠팡의 창고와 주문과 재고를 통째로 컴퓨터 안에 옮겨, 마감 시한을 늦췄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미리 수없이 돌려본 것이다. 자율주행차의 충돌을 미리 겪어보던 사람이, 이번에는 한 나라의 새벽 배송을 미리 겪어보고 있었다. 대상은 트럭에서 창고로 바뀌었지만, 오지 않은 미래를 안전하게 앞당겨 보는 그 방법은 똑같았다.
그렇게 검증을 거친 뒤, 주문 마감 시한은 뒤로 밀렸다. 자정 직전까지 망설이던 사람이 마침내 버튼을 누르고 잠이 들면,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문 앞에 상자가 와 있었다. 그 작은 마법의 뒤편에, 한 분야에서 길어 올린 무기로 전혀 다른 분야의 문제를 푼 한 사람이 있었다. 곁눈질로 배운 것이 늘 엉뚱한 자리에서 그를 구했듯, 이번에는 자율주행에서 배운 것이 물류의 한복판에서 그를 구했다.
그러나 답을 얻으면, 늘 또 다른 질문이 따라온다.
한국에서도 가능한가, 라는 물음의 답은 분명히 가능하다였다. 그러자 그의 안에서 새로운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조직을 만들고 싶은가. 잘 정비된 거대한 배의 선임 항해사로 남는 것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배의 설계도에 직접 손을 대는 것. 큰 조직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과, 조직의 모양 자체를 함께 빚어내는 것. 그 두 갈래 앞에서, 지금의 그에게는 후자가 더 무겁게 다가왔다.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소년, 0점짜리 시험지를 내밀던 청년, 종이상자를 들고 베이를 건너던 이방인, 칼의 빈자리를 메우던 신입. 그 모든 시절을 통과해 마침내 한국에서도 실리콘밸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제 손으로 확인한 그는, 이제 확인하는 사람을 넘어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가 평생 두 물에서 길어 올린 모든 것을, 가장 밀도 높은 영향 범위에 쏟아붓고 싶다는 욕심. 그 욕심이, 그를 또 한 번 익숙한 항구에서 낯선 바다로 밀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