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상자를 무릎에 얹고 베이를 건너던 그날 저녁부터 쏟아진 연락의 한가운데에, 킥스아이가 있었다.
킥스아이는 사실 컨테이전트의 고객이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인 고객이었다. 백야드 몬스터스, 배틀 파이러츠, 워 커맨더 같은 페이스북 기반 게임을 운영하며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었다. 컨테이전트를 누구보다 많이 썼기에, 그 한계 또한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결국 그들은 외부 분석 플랫폼에 의존하는 대신, 직접 만들기로 했다. 그러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컨테이전트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곧 컨테이전트를 만들던 사람들의 가치를 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를 내친 회사의 그림자가, 역설적으로 그를 다음 자리로 데려간 것이다.
그를 킥스아이로 이어준 연결의 한가운데에도, 컨테이전트에서 같은 불안을 나눈 비자 동료 애런이 있었다. 회사는 그를 버려도, 사람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런데 킥스아이가 그를 부른 이름이, 그에게는 낯설었다.
애널리틱스 엔지니어. 데이터를 분석하는 엔지니어. 그는 스스로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데이터 과학자도 아니었고, 데이터 마이닝 전문가도 아니었고, 통계 전문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검색 시스템을 만들고, 웹 서비스를 만들고, 백엔드를 짜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하둡과 하이브를 다뤄봤다지만, 어디까지나 컨테이전트에서 애런의 어깨너머로 익힌 정도였다. 그런 그를, 한 회사가 데이터 분석의 전문가로 불러 세운 것이다.
그는 면접을 보면서도 자신이 정말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킥스아이가 찾던 것은, 특정 학문의 박사가 아니었다. 그들이 원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엔지니어였다. 작은 회사에서 이것저것 다 해본 사람, 모르는 기술을 겁내지 않고 배우는 사람,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사람. 공교롭게도 그것은 태훈의 평생을 한 줄로 요약한 이력서나 다름없었다. 그는 늘 자격이 갖춰진 다음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시작한 다음에 자격을 갖춰온 사람이었다. 0점을 맞고도 다음에 들어가 살아남았듯이, 연결 리스트가 뭔지도 모르면서 오픈마루에 합격했듯이, 이번에도 그는 자신이 아닌 이름으로 불려 그 이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스로를 무엇이라 부르느냐보다 어느 문을 통과했느냐가 사람을 더 많이 바꾼다는 것을, 그는 다음에 입사하던 날 이미 배운 적이 있었다. 애널리틱스 엔지니어라는, 자신도 어색해하던 그 이름의 문을 그는 또 한 번 통과했다. 그리고 문 안으로 들어선 뒤에야, 그 이름에 맞는 사람이 되어 갔다.
킥스아이에서 그는 하둡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고, ETL과 분석 파이프라인을 만들었다.
게임 관련 데이터는 살아 있는 생물 같았다. 사용자들은 결코 예상한 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요구사항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어제 충분했던 처리량이 오늘은 병목이 되었고, 어제 들어맞던 데이터 모델이 오늘은 부족해졌다. 끝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그를 사로잡았다. 정해진 답을 구현하는 일이 아니라, 매일 모양이 바뀌는 문제를 매일 새로 길들이는 일. 부산에서 처음 홈페이지를 만들던 시절처럼, 다음에서 블로그를 밑바닥부터 다시 짓던 시절처럼, 그는 또 한 번 잘 모르는 세계에 들어가 그것을 어떻게든 작동하게 만들고 있었다.
입사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그는 시니어 애널리틱스 엔지니어로 승진했다. 데이터 전문가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간 것이 아니었다. 종이상자를 들고 쫓겨난 자리에서 손 내밀어 준 곳으로 옮겨가, 필요한 것을 하나씩 배우다 보니, 어느새 그 어색하던 이름이 그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는 여전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지만, 이제는 데이터를 이해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그리고 그 차이가, 곧 그의 시장가치를 통째로 바꿔놓는다. 그 성과는 머지않아 다른 문을 열었다. 이번에 그를 부른 곳은 작은 스타트업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전자 회사의 미국 연구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