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사람을 갈매기라 부른다고 했다. 태훈은 그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갈매기만큼 그의 생을 정확히 설명하는 말도 드물다. 갈매기는 항구에 산다. 떠나는 배를 보고, 돌아오는 배를 보고, 끝내는 바람에 몸을 맡긴다. 부산의 빈촌 남부민동 비탈에서 부산항을 내려다보던 아이는 아직 날 줄을 몰랐다. 다만 그 항구의 풍경만은 평생 그의 첫 시야로 남았다. 테헤란로와 샌프란시스코와 판교를 지나면서도, 눈을 감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곰팡이 핀 창틀 너머의 그 바다였다.
언젠가 그는 한 갈매기의 이야기를 알았다. 먹이를 구하려 바다 위를 맴도는 여느 갈매기들과 달리, 오로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 나는 일 그 자체에 사로잡혔던 한 마리 갈매기. 무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끝내 무리 밖으로 밀어냈지만, 조나단 리빙스턴은 비행을 멈추지 않았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것을, 그 갈매기는 몸으로 증명했다. 어린 태훈은 그 이야기를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공장에 들어가 돈이나 벌라는 말을 듣던 가난한 동네의 한 소년이, 먹고사는 일 너머의 무언가를 끝내 포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그 갈매기를 살고 있었다. 단지 먹이를 위해 나는 것을 거부한 새. 그것이 부산이 그에게 새겨준, 갈매기라는 이름의 진짜 뜻이었다.
그러나 갈매기의 이야기는 부산보다 조금 더 위에서, 또 다른 항구 도시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