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봄, 사무실 문이 열리고 경찰이 들어섰다.
일과 결혼 준비로 한창 바쁘던 어느 날이었다. 그들이 찾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그였다. 강태훈. 그는 그 길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로 연행되었다. 영문을 채 헤아리기도 전이었다. 평생 가난과 싸웠고, 험한 학교를 견뎠고, 회사가 무너지고 책임을 뒤집어쓰는 일까지 겪어 보았지만, 경찰에 연행되는 것은 또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그것은 그를 한 사람의 시민에서, 한순간에 피의자로 바꾸어 놓았다.
당시 한국은 어수선했다. 옥션 해킹 사건 이후 대형 인터넷 서비스들이 줄줄이 뚫리며,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연일 언론을 도배하고 있었다. 온 사회가 해커라는 단어에 예민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서, 그는 LG텔레콤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의 해커로 지목되었다. 공중파의 모든 뉴스가, 주요 언론이 그의 일을 다뤘다. 부산 달동네에서 발가벗겨진 채 집 밖에 세워졌던 그 수치의 감각이, 이번에는 전국의 화면을 통해 되돌아오고 있었다.
진실은 그가 받은 혐의와 거리가 멀었다.
발단은 오랜 친구 근식이었다. 근식이 어느 날 여자친구의 개인정보, 그러니까 주민등록번호 같은 것을 어디서 구할 수 있었는지 물어왔다. 출처를 추적하던 그는, 한 벨소리 서비스 웹사이트의 결함에 닿았다. 전화번호만 넣으면 그 번호의 가입자 정보가 그대로 조회되는 허점. 그것이 LG텔레콤 쪽의 하자임을 그는 알아차렸다.
문제는, 그 허점이 그가 처음 발견한 비밀이 아니었다는 데 있다. 그 정보는 이미 누구나 볼 수 있는 상태였다. 구글에서 특정 단어로 검색하면 나오는 페이지를 통해, 이미 몇 해 전부터 공공연히 조회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가 한 일은, 그 사실을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 자기 홈페이지에 작은 페이지 하나를 만든 것뿐이었다. 전화번호를 입력받아, 이미 공개되어 있던 그 페이지로 링크를 걸어 넘기는 정도의 일. 그 페이지를 만드는 데 그가 들인 시간은 길어야 오 분에서 십 분 남짓이었다. 그는 데이터를 가로채지도, 보관하지도 않았다. 단지 이미 열려 있는 문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를 그려둔 것에 가까웠다.
그의 의도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결함을 확인한 뒤 LG텔레콤에 정식으로 항의하고 알리려 했던 것이다. 평생 무언가의 규칙과 허점을 읽어내며 살아온 그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다음 수순이었다. 다만 하필 그것이 금요일 밤이었고, 미처 행동으로 옮기기 전인 월요일에 사건이 터져버렸다. 알리려던 사람이, 알리기도 전에 범인으로 지목된 것이다. 경찰은 그가 만든 페이지의 소스를 원본째 압수해 갔다. 한 줄의 거짓 학력이 아버지를 무너뜨렸듯, 이번에는 오 분 만에 짠 몇 줄의 코드가 그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고 있었다.
사건이 터지자, NHN은 곧바로 그를 인사팀으로 대기발령했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팀장에게 소명해 보았다. 그러나 팀장은 그를 보호하기는커녕, 왜 하필 자기가 팀장일 때 자신을 힘들게 하느냐며 그를 외면했다. 사내의 다른 팀장 한 사람이 그를 구제해 보려는 뜻을 비쳤지만, 법무팀과 인사팀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내 그의 출입카드가 정지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는 보안 요원에게 쫓겨나는 수모까지 겪었다. 한때 최연소 과장이라 불리고, 사상 최대의 성과급을 받고, 무대에서 발표하던 그 회사에서, 그는 이제 카드 한 장 먹히지 않아 건물 밖으로 끌려 나가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장 큰 물은, 그렇게 한 사람을 가장 차갑게 뱉어냈다. 거대한 조직은 진실을 가려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를 버렸다. 한 사람의 결백보다 회사의 평판이 먼저였고, 한 사람의 사정보다 사건을 빨리 덮는 일이 먼저였다. 피로 묶인 사람도, 한솥밥을 먹던 동료도, 끝내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 서늘한 진실을 그는 또 한 번 통과했다.
그러나 진실은 더디게, 그러나 끝내 제 모습을 드러낸다. 긴 법정 공방 끝에, 그는 개인정보 유출 부분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온 언론이 그를 해커로 지목할 때는 요란했으나, 그가 무죄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는 아무도 크게 다루지 않았다. 세상의 화살은 그렇게 빠르고, 세상의 정정은 그렇게 더디다. 그러나 적어도 그 자신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법도 끝내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는 죄인이 아니었다.
그 모든 일이 휘몰아치던 한복판에서도, 한 가지 약속만은 예정대로 지켜졌다.
김정은과는 그 무렵 사이가 깊어지고 있었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나 코엑스의 극장을 함께 드나들던 두 사람은, 어느덧 오래 곁을 지키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둘은 생애 첫 해외여행을 함께 떠났다. 홍콩을 거쳐 파리로, 다시 이탈리아의 로마와 베네치아와 아말피로 이어지는 긴 여행이었다. 평생 부산과 서울의 비탈만 오르내리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지중해의 햇빛 아래 서 있었다.
청혼이라 할 만한 거창한 순간은 따로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두 사람은 처갓집을 찾아 함께 식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장인어른이 말했다. 이제 결혼해야 하지 않겠나. 그 한마디에, 결혼은 조금 조급하게 진행되었다. 나중에야 그는 그 조급함의 이유를 알았다. 장인어른은 간암 말기였고, 살아생전에 딸의 결혼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곱게 자란 딸을 흙수저인 그에게 보내면서도, 장인어른은 그를 따뜻하게 아껴주었다. 그러나 그 아낌을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장인어른은 결혼 이듬해 초에 세상을 떠났다. 평생 그를 두렵게만 하던 친아버지와 달리, 짧게 곁을 내어준 그 또 한 사람의 아버지를, 그는 오래 그리워했다.
2008년 6월 14일. 대기발령이라는 가장 참담한 신분으로, 그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식을 올렸다. 두산국민학교 동창 모임에서 다시 만난 김정은. 그를 늘 다른 각도에서 비추어 주던 사람. 세상이 그를 해커로 부르고 회사가 그를 내치던 그 시기에, 그녀는 그의 곁에 남아 그와 평생을 약속했다.
사실 그것은 그녀에게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흙수저인 그와 달리 김정은은 유복한 집에서 곱게 자라, 선생님께 한 번 혼나 본 적이 없을 만큼 평탄한 길만 걸어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본래 두려움이 많았다. 그런 그녀가, 온 세상이 한 남자를 범죄자로 부르던 바로 그 시기에 그의 곁에 남기를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시기를 함께 통과하며, 또 그 뒤로 그가 무모해 보이는 선택을 할 때마다 삶이 어떻게든 다시 이어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그녀의 두려움은 조금씩 그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어 갔다. 그가 스스로를 의심할 때조차, 그녀는 그가 끝내 어떻게든 길을 낼 사람이라는 것을 그보다 먼저 알아갔다.
다만 그 결혼식은 쓸쓸한 데가 있었다.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는지, 네이버의 직장 동료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한때 함께 밤을 새우고, 함께 무대를 준비하고, 함께 밥을 먹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람이 가장 흔들릴 때, 곁을 지키는 얼굴과 멀어지는 얼굴은 정직하게 갈린다. 그는 서운했다. 그러나 그 서운함을 오래 품지는 않았다. 금세 털어냈다. 가난이 그에게 가르친 것이 하나 있다면,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평일에도 부산에서 올라와 어머니의 빈소를 끝까지 지켜준 진짜 친구들이 누구인지를. 손익으로 다가오는 사람은 손익으로 떠나고, 마음으로 다가온 사람은 끝내 남는다. 그날 그의 곁에 남은 사람들이, 그의 진짜 사람들이었다.
식을 올린 두 사람은 그리스 산토리니로 떠나 이 주가 넘는 긴 신혼여행을 보냈다. 에게해의 푸른 물과 흰 집들 사이에서, 그는 마음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자기 인생에서 가장 오래 다닌 회사를 공식적으로 떠났다. 떠밀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나온 자발적인 퇴사였다. 회사가 그를 버렸으니 그가 회사를 떠나는 것은 당연했지만, 그는 끌려 나가는 대신 제 발로 문을 나서는 쪽을 택했다. 마지막 자존심이었고, 마지막 존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LG텔레콤 사건 때문에 네이버를 떠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자신의 마음은 조금 더 복잡했다.
사건이 있기 전부터, 그는 이미 그곳에서 메말라 가고 있었다. 소질도 관심도 없던 관리자의 자리를 떠맡았고, 도전이 사라진 안온한 일상에 지루함을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밖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그의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구글이 눈빛이 없다며 돌려보낸 그 청년의 가슴에, 태평양 건너의 물음이 아직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던 것이다.
사건은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밀어붙인 마지막 바람이었다. 가장 큰 물이 그를 뱉어낸 바로 그 순간이, 역설적으로 그를 더 큰 바다로 떠나게 했다. 머무를 이유가 사라진 자리에서, 떠밀린 자는 떠나는 자가 되었다.
그는 짐을 쌌다. 판교에 닻을 내리려던 사람은, 그 닻을 미처 내리기도 전에 다시 짐을 꾸렸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향하는 곳은 부산도, 서울도, 제주도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이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태평양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게임 화면 속 세계가 현실보다 공평하다고 믿었던 한 소년이, 이제 그 게임을 만드는 회사의 본고장으로, 가장 공평한 물을 찾아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