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간 것은 거창한 선택이 아니었다.
스스로 미래를 설계해서도 아니었고,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포부 때문도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 정인준이 동명정보대학교에 함께 가자고 했고, 정보통신공학과가 괜찮다고 했다. 그는 그 말을 들었다. 깊이 고민한 결정이 아니었다. 어차피 등록금 낼 돈도 없어 못 갈 것 같았지만, 그래도 원서를 냈다. 그리고 빚을 내어 대학생이 되었다. 죽기 전에 대학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한 번 보기나 하자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호기심 하나로 들어선 문이었다.
문 안의 세계는 낯설었다. 공고를 나온 그에게 전공 수업은 다른 언어처럼 들렸다. 교수가 칠판에 적는 기호들, 동기들이 익숙하게 주고받는 용어들이, 그에게는 해독되지 않는 외국어 같았다. 처음에는 따라가 보려 했다. 그러나 기초가 없는 자리에서 출발한 그는 곧 뒤처졌고, 성적표에는 F가 쌓이기 시작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첫 학기 성적표를 받아 들었을 때, 반에서 F가 가장 많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가지 못한 학교들의 긴 목록 끝에 간신히 들어선 이 대학에서조차, 그는 또 한 번 맨 뒤에 서 있었다.
그는 인터넷 아이디를 하나 만들었다. Fguy. F를 가장 많이 받은 남자. 자조였다.
그러나 그 이름에는 또 다른 뜻이 숨어 있었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어야 비로소 한 송이 꽃이 된다는, 김춘수의 그 유명한 시가 떠올랐던 것이다. 현실에서는 보잘것없는 자신이지만, 이 이름을 붙이는 순간만큼은 잊히지 않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어딘가 치기 어린 바람. Flower guy, 꽃을 든 남자. 사실은 F학점이 먼저였고, 꽃은 나중에 그럴듯하게 갖다 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 순서야 어떻든, 자조와 소망이 한 이름 안에 포개진 것은 묘하게 그다웠다. 그는 평생, 가장 밑바닥의 사실을 가장 그럴듯한 의미로 바꾸어 살아가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 된다. 가난을 미학으로, 꼴찌를 자유로, F를 꽃으로.
그는 자기 홈페이지를 만들어 학교 계정에 올리고, 야후 디렉토리에 등록했다. 별것 아닌 자기소개와 몇 개의 글, 연락처가 전부인 페이지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한 감각을 주었다. 현실에는 뚜렷한 자리가 없었다. 집은 불안했고, 학교는 낯설었고, 미래는 희미했다. 어디에도 그가 온전히 속한 한 칸이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주소가 생겼다. 누군가 들어올 수 있고, 누군가 읽을 수 있고, 누군가 강태훈이라는 이름을 검색해 찾아낼 수 있는 곳. 현실에서 한 칸도 차지하지 못한 사람이, 가상의 공간에 처음으로 자기 한 칸을 가진 것이다. F학점의 F와 Flower의 F가, 그 작은 페이지 위에서 이상하게 겹쳐졌다. 그리고 바로 그 한 칸이, 그의 인생 전체를 끌어올리는 지렛목이 된다.
대학 생활이 늘 괴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을 친구들이 생겼다. 입학 초의 어느 날, 몇 안 되는 같은 과 여학생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여자 사람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 본 것이 초등학교 이래 처음이었다. 알고 보니 그에 대한 엉뚱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한다. 성숙한 외모 탓에 삼수쯤 한 복학생으로 오해받아, 친구들이 쉽사리 말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오해가 풀리자, 그는 빠르게 친구들 사이에 섞였다. 평생 무리의 가장자리를 맴돌던 사람이, 처음으로 무리의 안쪽으로 들어가 본 것이다.
술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접했다. 대개는 깡소주였고, 안주라고는 새우깡 정도였다. 돈이 없으니 안주가 변변할 리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웃었다. 친해질수록 마음속의 이야기를 한 자락씩 꺼내놓을 수 있었고, 그 자리들에서 전에 없던 의지가 조금씩 차올랐다. 돈은 없었고, 성적은 엉망이었고,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웃고 있을 때만큼은 그저 평범한 스무 살 청년 같았다. 사람은 거창한 희망 때문에만 사는 것이 아니다. 가끔은 내일도 누군가와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산다.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소년을 스무 살 너머로 데려간 것은, 그 값싼 소주와 새우깡의 밤들, 그리고 그 밤들을 함께한 얼굴들이었다.
그는 학과 B반 부총대를 맡기도 한다. 어디서든 조용히 스며들어 어느새 작은 책임 하나를 맡고 있는 것. 송도중학교에서 숨어 지내면서도 학생회 총무부장을 맡던 그 모순이, 대학에서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그는 늘 그렇게,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끝내 누군가에게 맡겨지는 사람이었다.
그 무렵 그는 학교 전산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집은 멀었고, 집에는 변변찮은 컴퓨터만 있었다. 인터넷은 전화선을 타고 느리게 들어오던 시절이라, 집에서 쓰면 전화 요금이 무섭게 불었다. 그러나 학교 전산실은 공짜였다. 컴퓨터도 좋았고, T3 국가 백본망으로 인터넷도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는 거기서 좋아하던 고전 게임 관련 정보를 찾느라 도서관에서 빌린 일본어 사전과 영어 사전을 양옆에 끼고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외국 사이트의 낯선 문장들을 사전을 뒤져가며 한 줄씩 해독했고, 마음에 드는 웹사이트를 만나면 소스 보기를 눌러 그 안의 구조를 들여다보았다. 잘해서 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서, 오래 있었다.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밤이든 낮이든, 그는 전산실에 죽치고 있었다.
그런데 오래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기회가 생겼다. 오랜 시간 전산실에 틀어박혀 있는 괴짜로 눈에 띈 것이다. 학교 홈페이지팀에서 사람을 늘린다며, 누군가 그에게 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는 홈페이지를 잘 만들 줄 몰랐다. 하지만 등록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다.
컴퓨터그래픽과 98학번 동급생이던 예선영과 김소연이 그를 도왔다. 그는 컴맹에 가까웠지만, 두 사람의 손을 빌려 학교 홈페이지를 유지하는 일을 해냈다. 1999년의 일이다. 그렇게 끼니가 해결되었고, 등록금을 댈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돈이 조금 남기도 했다. 좋아서 오래 머물렀을 뿐인 일이, 밥이 되고 학비가 되어 돌아왔다. 잘해서가 아니라 오래 있어서 얻은 첫 자리였고, 그는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대신 평생의 신조로 삼게 된다.
홈페이지팀에서 익힌 것들로, 그는 자기 홈페이지를 좀 더 손보았다.
여전히 별것 아닌 페이지였다. 자기소개와 몇 편의 글, 그리고 연락처. 누가 본다고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자기 자리 한 칸을 가지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작은 페이지는, 한 통의 전화를 불러오게 된다. 그 전화가 없었다면 그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수 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천마산 자락의 축축한 방에서, 야후 디렉토리 한구석에 올려둔 그 보잘것없는 페이지가, 세상을 향해 놓인 가느다란 다리 하나가 되리라는 것을.
가난한 아이가 세상에 놓을 수 있는 다리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다리는 길이가 아니라 건너는 사람에 의해 의미를 얻는다. 그는 그 짧은 다리를, 머지않아 건너게 된다.
그러나 그 전에. 대학에 들어선 그해, 1998년의 어느 여름 끝자락. 그는 평생 짊어지고 살아갈 한 친구의 죽음과 마주했다. 갈매기가 처음으로 날갯짓을 배우려던 그 항구에서, 한 친구가 영영 날지 못하게 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