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잠시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 자율주행의 차가운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그 모든 항해의 한가운데에서 조용히 켜진 빛 하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버에서 한창 거대한 규모와 씨름하던 무렵, 그러니까 그가 다시 태평양을 건너기 몇 해 전, 그의 인생에서 가장 작고 가장 환한 사건이 일어났다.
결혼 9년차였다. 일린이는 그렇게, 남들보다 한참 늦게 찾아왔다.
늦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낯선 나라에 정착하느라 바빴다. 비자를 걱정하고, 집을 사고, 회사를 옮기고, 종이상자를 들고 베이를 건너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그저 둘이 살아남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치열하게 사느라, 그리고 오래도록 부부 둘만 바라보고 사느라, 아이라는 존재의 무게를 그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평생 무언가를 일찍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집도, 안정도, 인정도 늘 남보다 늦게 왔다. 아이마저 그랬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었다. 아이를 꿈꾸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사하게도 아이가 생겼다. 평생 무엇 하나 쉽게 얻은 적 없던 그에게, 이것만은 순리처럼 왔다. 안 되면 말자며 살아온 사람이, 처음으로 간절히 바란 것을 어렵지 않게 얻은 셈이었다. 아내는 노산이었다. 외국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쉬울 리 없었고, 출산을 둘러싼 낯선 절차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막상 그 길에 들어서니, 두 사람이 그동안 통과해 온 험한 길들에 비하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장 거친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에게, 이 항해만은 잔잔했다.
일린이는 예정일보다 3주 먼저 세상에 나왔다.
집 근처 샌리앤드로의 카이저 퍼머넌트 병원에서였다. 일찍 나온다는 것은 부모를 졸이게 하는 일이다. 너무 이른 것은 아닌가, 너무 작은 것은 아닌가. 그러나 아이는, 몸무게가 조금 덜 나가는 것 말고는 더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작지만 단단한 울음을 터뜨리며. 서두를 것 없다는 듯, 그러나 더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 제 시간을 스스로 정해 도착한 아이였다.
태평양 건너의 한 병원에서, 한국에서 온 부부의 품에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안겼다. 그 작은 생명 안에, 두 개의 세계가 처음부터 함께 들어 있었다. 마산과 서울의 피가, 샌프란시스코와 헤이워드와 밀피타스의 공기 속에서 첫 숨을 쉬었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항구에서 항구로 떠돌던 한 사람이, 마침내 두 세계를 한 몸에 지닌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강일린으로 지었다.
일린, 곧 Elin은 스웨덴에서 온 이름으로 발광하는 빛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그리고 한자로는 해 일(日)에 굳셀 린(麟). 우연이 아니라, 같은 소망을 두 언어로 두 번 새긴 것이었다. 빛, 그리고 태양처럼 단단함. 거친 세상 속에서도 스스로 빛나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아이가 되기를. 그것이 아버지가 딸의 이름에 담은 기도였다.
이 이름의 무게는, 그의 지난 삶을 아는 사람만이 온전히 헤아릴 수 있다. 그는 평생 어둠을 통과해 온 사람이었다. 물이 나오지 않아 이끼 낀 다라이로 세수하던 방의 어둠.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담벼락 앞의 어둠. 어머니의 빈소를 홀로 지키던 밤의 어둠. 그 모든 어둠을 지나온 사람이, 제 딸에게는 빛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자신이 평생 갖지 못했던 것, 어둠 속에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그것을, 딸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그는 일린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기 안의 그 오래된 어둠에게 작별을 고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 집에는 빛이 있다고.
그가 일린이에게 줄 수 있었던 가장 큰 것은, 곁에 있는 시간이었다.
일린이는 그의 어린 시절과는 정반대의 환경에서 태어났다. 압류 딱지도, 이끼 낀 다라이도, 외상값에 머쓱하던 가게 앞도 없는 집. 그가 평생 갖지 못했던 경제적 여유 한가운데로, 아이는 왔다. 게다가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일하는 시간과 장소에 관대했다. 자리를 지킨 시간이 아니라 내놓은 결과로 평가받는 곳이었으므로, 그는 낮에 잠시 일을 멈추고 아이를 안아준 뒤 다시 책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해진 출퇴근에 매여,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을 통째로 회사에 바쳐야 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닥쳤다. 온 세상이 문을 닫고 집 안에 갇히던 그 시기는, 역설적으로 그에게는 선물이었다. 회사도 학교도 멈추고 온 가족이 종일 한집에 머물던 그 긴 날들 동안, 그는 일린이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놀고, 아이가 자라는 하루하루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 그것은 그의 친아버지가 그에게 한 번도 주지 못한 것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아버지, 일찍 떠난 어머니, 그 빈자리를 그는 제 딸에게만은 물려주지 않으려는 듯 곁을 지켰다. 가장 좋은 환경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가장 가까이서. 자신이 받지 못한 모든 것을, 그는 딸에게 주고 있었다.
먼, 일린이가 제법 자랐을 무렵에야 세상에 나온 한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에서, 그는 깊은 영감을 받게 된다. 낯선 땅에 떨어진 한국인 가족이, 보장된 것 하나 없는 거친 흙에서 그래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일린이가 태어나던 2017년에는 아직 세상에 없던 이야기였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이미 이 가족이 살아내고 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 이야기가 빌려온 이미지가 미나리였다. 누가 정성껏 돌보지 않아도, 물가 아무 데나 떨어지면 끈질기게 뿌리를 내리고 퍼져 나가는 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낯선 나라에서 그래도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이민자의 생명력을, 그 작은 풀만큼 정확히 닮은 것도 드물다.
태훈의 가족이 꼭 그랬다. 곧 돌아갈 줄 알고 가방을 다 풀지 않았던 부부가, 낯선 땅에서 집을 사고, 강아지를 들이고,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일린이는 그 낯선 흙에 떨어진 한 포기 미나리였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났지만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 두 언어와 두 문화 사이에 놓인 아이. 그런 아이가 제 자리를 찾으며 자란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일린이라는 이름의 단단함은, 바로 그 미나리의 끈질김과 닮아 있었다. 어디에 떨어져도 단단히 뿌리내리고, 거친 세상 속에서도 제 빛으로 자라기를. 그것이 아버지의 소망이었다.
그러나 일린이는, 미나리이기 이전에 무엇보다 하나의 다리였다.
그가 자기 인생의 종착으로 삼게 되는 도시, 판교의 이름은 널빤지로 놓은 다리라는 뜻이다. 그는 평생을 바쳐 두 세계 사이에 자기 몸을 걸쳐 다리가 되려 애썼다. 한국과 실리콘밸리, 모국어의 땅과 새 언어의 땅, 가난했던 과거와 닿은 현재 사이에. 그런데 일린이는, 한국인의 피와 미국의 출생지를, 두 언어와 두 문화를 한 생명 안에 처음부터 하나로 지니고 태어난 아이였다. 아버지가 두 기슭 사이에 힘겹게 자기를 걸쳐 다리가 되었다면, 딸은 태어날 때부터 그 두 기슭을 이은 다리 그 자체였다. 그가 평생 되고자 한 것을, 딸은 존재만으로 이미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판교라는 다리의 도시에 끝내 정착하게 되는 것은, 그 작은 다리 하나가 먼저 그의 품에 안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실 처음부터 일린이를 향한 것이었다.
맨 앞장에 적힌 헌사. 강일린에게. 이 모든 이야기는, 언젠가 자란 딸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적어 내려간 긴 편지다. 마산에서 태어나 가리봉동에서 자라고, 천마산 자락의 셋방에서 죽음을 떠올리고, 0점을 맞고도 살아남고, 종이상자를 들고 베이를 건너고, 끝내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떠나고 돌아오기를 반복한 한 남자의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거친 세상 속에서 태양처럼 단단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가, 그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린아, 아빠는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고 수없이 넘어졌단다. 잘나서 무엇을 이룬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고,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죽지 못해 버티다 보니 어찌어찌 여기까지 흘러왔을 뿐이야. 그러니 너도 어떤 어둠 앞에서든, 너의 이름을 기억하렴. 너는 빛이고, 태양처럼 단단한 아이란다. 세상이 너에게 무어라 말하든, 그것만은 잊지 말아라.
빛이 도착하고 몇 해가 흐른 뒤, 한 번의 귀향을 지나, 아버지는 다시 한 번 먼 바다로 떠날 채비를 한다. 이번에는 운전자가 없는 차들이 스스로 달리는, 가장 미래적이고 가장 낯선 물을 향해. 그러나 이제 그의 항해에는 전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어떤 바다로 나가든, 돌아올 항구에 빛 하나가 켜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빛이, 두 세계를 잇는 작은 다리이기도 하다는 것. 그 빛이자 다리의 이름이 일린이었다. 아버지가 평생 놓으려 애쓴 다리가, 이미 그의 품 안에서 숨 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