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숨을 고르고 시작해야 한다. 이 장이 그렇다.
1998년, 대학에 갓 들어선 그해 2학기 개강 무렵이었다. 정보통신공학과 B반의 첫 엠티가 양산 배냇골로 정해졌다. 배냇골은 깊은 계곡이 흐르는 곳이었다. 막 도착해 짐을 풀고, 더위를 식히러 다들 계곡으로 내려갔다.
물과 친한 태훈은 바위 위에서 다이빙을 하며 제법 실력을 뽐냈다. 정명재의 화려한 수영 솜씨 앞에서 자신의 개헤엄이 머쓱하기도 했지만, 그 잠깐의 즐거움에 모두가 취해 있었다. 그는 친구들에게 시원하게 뛰어들라고 권했다. 예병수에게도 그랬다.
유승준을 좋아하던 예병수는 우리 과의 멋진 친구였다. 덩치도 우람했고, 자기 차도 있었고, 어딘가 세련된 데가 있었다. 그는 한 차례 거절했다. 그러나 들뜬 분위기에 끝내 못 이겨, 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길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태훈은 그를 건지려 안간힘을 썼다. 물속에서 두 눈을 뜬 채 살려달라 손을 뻗던 친구의 얼굴을, 그는 평생 잊지 못한다. 친구의 팔 힘에 자신마저 함께 빨려 들어가, 끝내 그 손을 뿌리치고 물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의 선택은 살기 위한 것이었고 누구도 그를 탓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사람의 죄책감은 이성의 판결을 듣지 않는다. 그날 이후 그 손은, 그의 안에서 한 번도 완전히 놓이지 않았다.
이레 동안 그는 뜬눈으로 영안실 곁을 지났고, 한 절에서 친구의 장례를 끝까지 함께 치렀다. 향 냄새와 독경 소리, 잠 없는 밤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청년에게 그 이레는 너무 길고 무거웠다.
장례를 모두 치르고 난 뒤에도 자책은 오래 그를 떠나지 않았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지금까지도 그를 떠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그는 받아줄 사람이 없는 허공에 오래 되뇌었다. 언젠가 저승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까, 하는 생각을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한다.
그러나 이 죽음은 그의 안에 죄책감만 남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한 가지 진실을, 너무 이른 나이에, 너무 가혹한 방식으로 새겨 넣었다. 삶이란 얼마나 허무한가. 한순간의 들뜸과 한 번의 도약 사이에서, 사람은 그렇게 어이없이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내 삶 또한 언제든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 계곡에서 보았다.
기이하게도, 이 허무의 자각은 그를 무너뜨리는 대신 어떤 방식으로 그를 살게 했다. 어차피 삶이 이토록 덧없는 것이라면, 멀리 내다보며 움켜쥐려 애쓸 이유가 무엇인가. 안되면 말자. 끝을 정해두지 않고, 결과를 미리 그리지 않고, 그저 지금의 한 걸음에 충실하자.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소년의 체념과, 친구를 잃고 깨달은 삶의 덧없음이, 그렇게 한자리에서 만나 그의 평생을 떠받치는 단 하나의 태도가 되었다. 가장 무거운 상실이 가장 가벼운 삶의 방식을 낳은 것이다.
그날의 계곡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안다. 자신이 지금 살아 숨 쉬며 무언가를 만들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이 모든 시간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그날 물 밖으로 나온 자에게 주어진, 갚을 길 없는 빚 같은 것이었다.
예병수. 그 이름을 여기 적어둔다. 한 사람의 짧은 생이 다른 한 사람의 평생에 이렇게 깊이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누군가는 기억해 주기를 바라며.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네 덕분에 나는, 살아 있다는 것의 무게를 일찍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