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린아.
네가 이 글을 읽을 만큼 자랐을 때, 아빠는 아마 지금보다 흰머리가 늘었거나,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리 적어둔다. 사람은 지금 보이는 모습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네가 아는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가고, 화면 속의 글자들을 들여다보고, 저녁이면 돌아와 네 하루를 묻는 사람일 것이다. 평범하고, 조금 피곤하고, 가끔 농담이 서툰 한 중년의 어른.
그러나 그 어른에게도 아홉 살이 있었다. 지금 딱 네 나이다. 압류 딱지가 붙은 방에서 산수 경시대회 상장 한 장을 받아 오던 아홉 살, 종이에 건반을 그려 소리 없는 피아노를 치던 아홉 살, 어머니가 보던 드라마의 결말을 끝내 보지 못한 아홉 살이 있었다. 네가 지금 그 나이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빠는 가끔 마음 한구석이 시리다. 아빠는 그 아이를 오래 부끄러워했고, 더 오래 외면했다. 이 책은 그 아이에게 뒤늦게 건네는 화해의 편지이기도 하다.
이건 성공담이 아니다. 아빠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려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빠가 얼마나 자주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했는지, 얼마나 자주 도망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손에 기대어 다음 골목으로 넘어갔는지를 남기고 싶었다.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만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채로, 두려운 채로, 그래도 한 발을 내딛는 사람이 다음 풍경을 본다. 아빠가 평생 품고 산 단 한 줄의 문장이 있다면 그것이다. 안되면 말자. 우습게 들리겠지만, 이 한마디가 남부민동 비탈에서 태평양 건너까지 아빠를 데려다주었다.
언젠가 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도 가질 수 없는 날이 오거든, 그때 이 책을 펼쳐주면 좋겠다. 아빠가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단 하나를 굳이 꼽으라면, 부끄럽지만 그것은 “가난”이다. 가난은 아빠에게 진짜 친구를 가려내는 눈을 주었고, 한 끼에 감사하는 법을 가르쳤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상상으로 지어내는 손을 길러주었다. 너에게 그 결핍을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겠지만, 결핍이 사람을 어떻게 빚는지는 알려주고 싶었다.
부산 사람을 갈매기라 부른다. 갈매기는 항구에 산다. 떠나는 배를 보고, 돌아오는 배를 보고, 결국은 바람에 몸을 맡긴다. 곰팡이 핀 창틀 너머로 부산항을 내려다보던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그때 날 줄 몰랐다. 다만 배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오래 바라보았을 뿐이다. 이 책은 그 갈매기가 테헤란로와 샌프란시스코와 판교를 지나며 남긴, 불완전하지만 정직한 항해 일지다.
읽다가 아빠의 판단에 동의할 수 없는 대목이 있어도 괜찮다. 결론을 물려주려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물려주려는 것이니까. 다만 이 항로를 다 따라오고 나면, 너도 언젠가 네 삶을 조금은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한다.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