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헤드모바일은, 태훈이 처음으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준 곳이었다.
센트럴에스티에서의 그는 늘 누군가를 따라가는 사람이었다. 김성수가 문을 열어주었고, 정원희가 길을 보여주었고, 동료들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었다. 그러나 어헤드모바일에서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 그에게 일을 맡겼고, 그는 처음으로 그 기대를 넘어섰다.
그 시작에는 김후수 이사가 있었다. 김후수는 그의 완성된 실력을 알아본 사람이 아니라, 실력을 만들 기회를 준 사람에 가까웠다. 당시 태훈은 아직 학사 학위도 없었고, 이름난 학교 출신도 아니었고, 경력도 길지 않았다. 그런 사람에게 제법 큰일을 맡기는 것은 모험이었다. 김후수는 그 모험을 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좋은 어른이 있다. 잘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어른과, 아직 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잘할 기회를 주는 어른. 태훈의 인생을 바꾼 것은 대개 후자였다.
처음 기대했던 위치기반 서비스는 아니었다. 첫 프로젝트는 LG텔레콤 VOC 시스템이었다. 고객의 불만과 문의를 관리하는 웹 서비스. 미래적이고 화려한 모바일 인터넷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인생은 늘 그런 식이었다. 원하던 곳이 아니라 원하지 않던 곳에서 그는 배웠다. 가지 못한 외고가 아니라 떠밀려 간 공고가 길을 열었듯, 그가 정말로 무언가를 익힌 자리는 언제나 동경하던 자리가 아니라 떠맡겨진 자리였다.
이어 맡은 CSR 프로젝트에서, 그는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냈다.
기존의 오라클 기반 서비스는 느렸다. 조회 한 번에 4초, 5초씩 걸렸다. 사용자가 버튼을 누르고 화면이 바뀌기까지의 그 몇 초가, 현장에서는 매일 쌓이는 고통이었다. 태훈은 데이터베이스 전문가가 아니었다. 모델링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거의 없었다. 다만 센트럴에스티에서 동료들이 ER-Win으로 테이블 구조를 그리는 것을 곁눈질한 기억이 있었다. 그는 그 어렴풋한 기억과 직감을 붙잡고, 테이블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았다. 종이에 데이터의 흐름을 그려보고,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최대한 단순하게 고쳤다.
종이에 흐름을 그리는 일. 그것은 어린 시절 종이에 부루마불의 칸을 긋던 손이, 그리고 종이 건반을 누르던 손이 하던 바로 그 일이었다. 도구만 달라졌을 뿐, 그는 여전히 빈 종이 위에 보이지 않는 규칙을 그려 넣고 있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4초, 5초 걸리던 조회가 채 1초도 안 되는 시간으로 줄었다. 지금 기준으로는 대단한 기술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의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자기가 만진 것이 실제 변화를 만들어냈다. 느리던 것이 빨라졌고, 고통이던 것이 견딜 만한 것이 되었다. 오락실 화면 앞에서 노력과 결과가 정직하게 이어지던 그 감각이, 이번에는 현실의 한복판에서 재현된 것이다. 그 세계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무언가를 더 낫게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사람들이 그의 의견을 듣기 시작했다. 그가 추천한 사람의 채용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 센트럴에스티에서 여전히 고생하던 정원희도 어헤드모바일로 오게 되었다. 자신의 롤모델을, 이제는 자신이 있는 회사로 불러오는 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따라가던 사람이 누군가의 길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이양동 사장이 그의 이름을 말했다.
앞으로 몇 달 치 월급은 강태훈 씨가 벌어주셨다는 취지의 말이었다.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태훈은 당황했고, 또 부끄러웠다. 박수를 받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늘 박수가 아니라 꾸중에, 인정이 아니라 의심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잠시나마 자신이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줄곧 그를 따라다니던 감정, 나는 없어도 되는 사람이라는 그 오래된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린 순간이었다. 발가벗겨진 채 집 밖에서 벌을 서던 아이, 자랑할 데 없는 상장을 서랍에 넣어두던 아이, 회의에서 단어의 절반도 못 알아듣던 신입이, 마침내 자기 이름이 불리는 자리에 서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인사치레였을 그 한마디가, 그에게는 평생의 결핍을 메우는 작은 한 숟갈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그는 또 다른 벽도 보았다.
LG텔레콤 사무실에 상주하며 대기업의 공기 속에 들어갔을 때, 학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표식인지 느꼈다. 누군가는 학교 이름만으로 인정받았고, 누군가는 시작부터 자신을 설명해야 했다. 그는 후자였다. 그는 동명정보대학교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아직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다. 학사 학위가 없다는 사실은 이상하게 자주 마음에 걸렸다. 일로는 증명했지만, 종이로는 증명되지 않은 사람. 아버지가 한 장의 종이에 적은 거짓 학력 때문에 무너졌던 것을 떠올리면, 학력이라는 종이의 무게는 그에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때 그는 결심했다. 하루라도 빨리 졸업해야겠다고. 그 결심은 그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그를 부산으로 돌려보낸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일도, 학위도, 미래도 아니었다. 그해 봄, 온 나라가 붉은 함성으로 끓어오르기 시작하던 그 무렵, 한 통의 전화가 그에게 걸려왔다. 오래전 그의 곁을 떠났던 한 사람의, 마지막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