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의 남부민동은 축축했다. 봄이라 해도 달동네 셋방의 냉기는 쉽게 빠지지 않았고, 슬레이트 지붕은 밤새 머금은 차가움을 아침까지 방 안으로 흘려보냈다. 바깥세상은 새 천 년의 들뜸으로 시끄러웠다. 밀레니엄이라는 말이 도처에 붙어 있었고,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가 신문 1면을 채웠다. 그러나 천마산 자락의 그 방까지, 새 천 년의 빛은 들지 않았다.
태훈은 천장을 보고 누워 있었다. 몇 시간째인지 알 수 없었다. 낮이 가고 밤이 오고, 제대로 자지도 못한 채 다시 아침이 된 것 같았다. 배가 고팠지만, 배고픔보다 답답한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가려면 차비가 필요했고, 학교를 계속 다니려면 등록금이 필요했다. 둘 다 없었다.
대학생 신분으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이미 거의 다 끌어다 쓴 뒤였다. 직전 학기 성적은 한 과목을 빼고 전부 F였고, 며칠 안에 등록금을 내지 못하면 휴학을 해야 했다. 군대를 갈까 생각도 했다. 그러나 동생은 집을 나간 상태였고, 아버지는 빚에 쫓겨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누군가는 남아 있어야 할 것 같았지만, 남아 있는다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는 그 무력감 속에 그저 누워 있었다.
천장만 바라보던 그 자세는, 이 책에 이미 한 번 나왔다.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소년이 며칠을 굶으며 누워 있던 그 자세. 그러니까 그는, 생의 끝을 떠올리던 바로 그 자리에 여전히 누워 있었던 것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이뿐이었다. 스물한 살이 된 그는, 열일곱의 그때보다 조금 더 지쳐 있었고, 조금 더 무뎌져 있었다.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면, 이번에는 전화가 울렸다는 것이다.
요금이 밀린 지 꽤 되었는데도 아직 끊기지 않은 것이 이상했다. 마치 그 전화 한 통을 받기 위해, 끊겨야 할 회선이 끝까지 버티고 있었던 것처럼. 그는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았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중앙정보기술의 김성수 이사라고 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국가기관인가 싶었지만 곧 회사라고 했다. 자바로 채팅 서비스를 만들려 하는데, 아르바이트를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태훈은 잠시 말을 잃었다. 넷츠고에서 채팅을 해본 적은 있어도, 채팅 서비스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몰랐다. 프로그래밍이라고는 학교에서 들은 C언어 수업이 거의 전부였고, 그마저 C0를 받았다. 자바라는 말도 제대로 몰랐다. HTML 안에 복사해 붙이던 자바스크립트와 자바가 다른 것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저, 그런 거 할 줄 모릅니다.
전화기 너머의 남자는 망설이지 않았다. 제가 강태훈 씨 홈페이지를 봤는데,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쳤다. 홈페이지라면, 학교 과제로 만들어 학교 계정에 올리고 야후 디렉토리에 등록해 둔 그 보잘것없는 페이지였다. 자기소개와 글 몇 편과 연락처가 전부인 페이지. 누가 본다고 만든 것도 아니었던 그 한 칸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사실부터가 낯설었다. 천마산 자락의 축축한 방에서 세상을 향해 가느다랗게 놓아두었던 그 다리를, 마침내 누군가 건너온 것이다. 잘해서가 아니라 오래 머물러 만들어 둔 한 칸이, 처음으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남자는 이어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300만 원 정도 드릴 테니 한번 해봅시다. 섭섭지 않은 금액일 겁니다.
300만 원. 그 숫자는 방 안에 툭 떨어진 물건처럼 분명했다. 당시의 그에게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이번 학기를 이어갈 수 있는 금액이었고, 휴학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능성이었고, 며칠은 배를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바를 몰라도, 채팅 서비스를 몰라도, 그것은 이제 덜 중요했다. 그는 돈이 필요했다. 더 정확히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에게는, 모르는 일도 거절할 자격이 없다.
네. 그럼 해보겠습니다.
통화는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끊고 나서도 그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기쁨보다 피로가 먼저 왔다. 그는 다시 누웠고, 곧 잠들었다. 그 전화가 자기 인생을 어디로 데려갈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배냇골의 계곡에서, 그는 물속에서 뻗어온 손을 끝내 놓아야 했다. 그 일은 오래 그를 짓눌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뭍에 누운 그에게 한 손이 뻗어왔다. 이번 손은 그를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손이 아니라, 물 밖으로 끌어올리는 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문제는 다시 차비였다.
등록금이 없는 것과 차비가 없는 것은 다른 종류의 절망이다. 등록금은 언젠가 해결될지도 모르는 먼 문제처럼 보이지만, 차비는 지금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문밖으로 한 발도 나갈 수 없는 문제다. 절망에도 크기와 거리가 있어서, 가장 작은 것이 때로 가장 급한 것이 된다. 그는 옆집 문을 두드려 한참 어린 동생 최광혁에게 얼마간의 돈을 빌렸다. 1,200원쯤이었나. 정확히 얼마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빌렸다는 사실과, 그 돈으로 집을 나섰다는 사실만 남았다.
부산벤처빌딩은 생각보다 번듯했다. 사상 엄궁에 있는 건물이었다. 벤처라는 단어는 도시 곳곳에 이상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신문은 매일 새로운 성공담을 쏟아냈다. 인터넷 회사가 생기고, 투자가 들어오고, 누군가는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들. 코스닥 지수가 연일 치솟던 그 시절, 세상은 너도나도 인터넷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태훈에게는 먼 나라 말 같았다. 그는 그저 건물 입구에서 회사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아직 문이 열리지 않은 사무실 앞을 서성였다. 옆집에서 빌린 차비로 도착한 그 건물 앞에서, 그는 자기가 그 화려한 시대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 가늠해 보았을 것이다.
그때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안경을 썼고, 첫인상은 회사원이라기보다 경비원에 가까웠다. 지금 생각하면 실례되는 표현이지만, 스무 살 태훈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면접 보러 왔느냐고 남자가 물었다. 자신도 면접을 보러 왔다고 했다. 그가 이봉호였다. 태훈보다 다섯 살이 많았고, 그 다섯 살의 차이는 당시의 그에게 거의 어른과 아이의 차이처럼 느껴졌다. 같은 회사의 문을 같은 날 두드린 사람. 닫힌 사무실 문 앞에서 나란히 서성이던 그 짧은 시간이, 사회로 나서는 그의 첫 출발을 혼자가 아니게 해주었다. 사람은 자기 인생의 한 출발선을 누구와 함께 섰는지를, 대개 한참 뒤에야 따뜻하게 떠올린다.
면접은 예상보다 허술했다. 시험도 없었고, 어려운 질문도 없었다. 채팅 사이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몇 마디 나눈 것이 전부였다. 그는 합격했다.
며칠 뒤 첫 출근을 위해 회사에 갔을 때, 김성수 이사는 채팅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고 했다. 태훈은 순간 끝났다고 생각했다. 겨우 잡은 줄이 손에서 미끄러지는 느낌이었다.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내민 얼굴이 다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런데 김성수는 말을 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입사하는 건 어떻습니까.
월급은 50만 원이었다. 계약서를 본 그는 당황했다. 금액이 적어서가 아니었다. 50만 원도 그에게는 큰돈이었다. 문제는 등록금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회사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이번 학기 등록금을 내줄 테니 계약서에 사인하라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가끔, 너무 뜻밖이라 기쁨으로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순간이 있다. 그에게는 그 순간이 그랬다. 누군가는 채팅 프로젝트의 무산을 불운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산이 없었다면 입사 제안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닫힌 문은 늘, 옆에 있던 다른 문 하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날 그는 학교로 향했다. 취직이 되었으니 휴학을 해야 했다.
담당 교수였던 손영선 교수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교수는 믿지 못했다. 너 같은 꼴통이 무슨 취직이고. 사기당하는 거 아이가. 지금 돌이켜보면 교수의 의심도 이해가 간다. F를 수두룩하게 받던 학생이 갑자기 회사에 취직했다니, 누구라도 이상하게 보았을 것이다. 사실 태훈 자신도 조금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사기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했고, 무엇보다, 살아야 했다. 사기든 행운이든, 그것은 지금 천장만 바라보며 굶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2000년 3월 27일, 강태훈은 중앙정보기술에 입사했다. 같은 날 동명정보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는 휴학으로 처리되었다.
사람들은 그날을 그의 프로그래머 인생의 출발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날의 그는 자신이 프로그래머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바도, 객체지향도, 소프트웨어 공학도 몰랐다. 그저 등록금을 내준 회사에 출근하는 한 학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생은 때로, 스스로를 무엇이라 부르느냐보다 어느 문을 통과했느냐에 더 많이 좌우된다. 그는 그날 처음으로 문 하나를 통과했다.
문 안에는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세계가 있었다. 코드와 서버와 마감과 장애가 있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또 한 번의 꼴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컴퓨터공학 전공 졸업생들과 그는 게임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알고 있었다. 꼴찌에서 시작하는 일에 관해서라면, 자신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는 것을. 그는 평생 꼴찌로 출발해 왔고, 그래서 꼴찌라는 출발선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