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를 떠난 그는 곧장 한 회사에 들어갔다. 오픈마루 스튜디오. 게임 회사 엔씨소프트의 대표 직속 신사업 부서였다.
다음 시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권유로 합류한 그곳에서, 그는 멀티미디어 스트리밍 서비스를 혁신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설립자와의 일대일 기술 면접에서 그는 연결 리스트를 뒤집어 보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솔직히 연결 리스트가 무슨 말인지도 몰라 시작조차 못 했다. 당연히 떨어진 줄 알았는데, 다음 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또 한 번, 0점짜리 면접의 변주였다. 지금은 흔한 스트리밍이지만 당시에는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이었고, 아주 큰 파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룰지 매일 토론했다. 그때의 고민은 그가 빅데이터와 분산 파일 시스템을 이해하고 온라인 스토리지를 만드는 데 큰 밑거름이 된다. 당장은 몰랐지만, 흘려보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입사 두 달여 만에 그곳을 떠났다. 사정이 있었다. 더 정확히는, 그가 오픈마루에 들어가자마자 세계적인 게임 회사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떠나려고 그는 월급을 연봉의 십삼분의 일밖에 주지 않는다는 둥 억지 핑계를 대며 그만두겠다고 우기다가, 떠나기 직전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짧았지만, 그 두 달 사이에 만난 동료들과는 오래도록 연이 이어진다. 머문 시간의 길이가, 남는 인연의 깊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는, 게임을 사랑한 사람에게는 거의 종교 같은 이름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워크래프트, 그리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1994년 워크래프트로 출발해 배틀넷이라는 독창적인 연결 방식에 힘입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게임 스튜디오의 하나로 올라선 회사.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었고, 2004년 한국에 처음 해외 지사를 세웠다. 부산 달동네의 그 어두운 오락실에서, 동전 몇 개로 시간을 잊던 소년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실보다 공평한 세계였다. 노력한 만큼 점수가 오르고, 실수한 만큼 정직하게 죽는 세계. 그 공평한 세계를 만들던 회사가, 이제 그를 불렀다. 어린 시절 자신을 구원했던 그 화면의 뒤편으로, 그가 직접 걸어 들어가게 된 것이다.
면접 전날 그는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와 눈이 충혈된 채였고, 영어 면접은 통역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일이 잘 풀렸다. 청담동의 블리자드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 팀에서, 그는 웹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 서류에 서명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상사 맥에게 한 가지 포부를 밝혔다. 한국 사무실을 교두보 삼아, 언젠가 캘리포니아 어바인의 본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의외로 맥은 얼마간 성과를 잘 내면 적극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구글이 눈빛이 없다며 돌려보낸 그 청년은, 이제 다른 문 앞에서 같은 꿈을 다시 입에 올리고 있었다. 미국. 태평양 건너. 가장 공평한 물.
일은 익숙하고 안락했다. 자바와 스프링과 오라클을 쓰는 개발 환경은 그가 손에 익힌 그대로였고, 걱정했던 본사와의 소통도 영어가 능숙한 동료들의 중재로 무리가 없었다. 가끔 그는 검토를 거치지 않은 엉망진창의 영어로 본사에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들이 용케 알아듣고 반응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 사소한 경험이 그에게 작은 확신을 주었다. 나도 미국에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리치 왕의 복수 출시 이벤트를 시작으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계정과 결제 관련 작업, 스타크래프트2 출시를 앞둔 배틀넷 계정 통합 업무를 해나갔다.
그러나 그 무렵, 시련은 또 한 번 겹쳐서 왔다.
2008년 12월, 갑작스러운 사고로 그의 오른쪽 손목이 부러졌다. 뼈가 완전히 으스러져, 수술을 하더라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생명에 지장이 있어도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수술실로 들어가, 전신마취 후 여덟 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손가락이 겨우 까딱이는 데에만 이 주가 걸렸다. 키보드 앞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에게, 부러진 손목은 단순한 부상이 아니라 정체성의 위협이었을 것이다.
신혼의 아내는 두어 달 가까이 남편을 간호했다. 그런데 그 무렵, 완치된 줄 알았던 장인의 암이 갑자기 재발해 서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아내는 남편과 아버지 사이를 오가며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그러던 중 2009년 새해가 밝은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장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기 치료를 미루고 퇴원해, 아내의 본가인 전북 완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 주변이 전혀 정리되지 않았고, 사업적으로 얽힌 금전 관계를 추스르는 데에만 한 달가량이 들었다. 결혼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는 또 한 번 죽음과 그 뒷자리를 감당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던 그 손이, 이제 장인의 뒷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해가 바뀐 3월, 그는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블리자드는 한가했다. 게임 출시 일정이 늘어지기로 유명한 회사라, 그 공백마다 게임 외 부서는 일을 억지로 만들어 하는 경향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여러 글로벌 코드를 리팩터링해 보고, 자기 업무와 무관한 사내의 다른 코드들을 살펴보며 배웠다. 안락했지만, 네이버에서 메말라 가던 그 권태가 여기서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한국 사무실에서 진행한 일과 관련해 본사와 협업할 일이 생겼고, 개발팀장이 그를 추천해 거의 확정 단계에 이른 것이다. 어바인 본사. 그가 입사하며 맥에게 밝혔던 바로 그 꿈의 문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문은, 닫혔다. 새로 부임한 매니저가 그의 근무 기간이 짧다는 것과 국내 업무에 더 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어, 다른 동료를 대신 보내는 것으로 결론지은 것이다. 그 매니저는 본사의 누군가에게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본사의 지인을 이용해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는 황당한 말까지 했다. 본사에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고, 파벌과 정치를 누구보다 혐오하던 그를 전혀 모르고 한 말이었다.
그는 크게 상심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 많은 배려를 해준 회사였기에,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바로 그때, 국내의 한 게임 회사에서 강력한 러브콜이 왔다. 그의 국제적인 감각을 살려 새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시작할 기회와, 파격적인 연봉 인상. 그는 흔들렸다. 다만 그 시점에 그만두면 업무에 큰 공백이 생길 것이 우려되어, 후임을 찾느라 거의 매일 사람을 면접 봤다. 그러나 그가 직접 도입한 코딩 인터뷰를 통과하는 이가 없었다.
후임을 찾지 못해 난감하던 그가 마침내 바통을 넘긴 사람은, 정원희였다.
중앙정보기술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바스크립트를 정말 잘 짠다는 한마디로 그에게 처음 허가증을 건넨 사람. 영어로 썬마이크로시스템즈에 전화를 걸던, 그가 처음으로 닮고 싶었던 거울. 월급이 밀려 굶던 시절 말없이 밥을 사주던 선배. 그 정원희가, 이제 그가 비우는 블리자드의 자리로 들어왔다. 따라가던 사람이 누군가의 길이 되어가던 그 흐름이, 여기서 한 번 더 되풀이된 것이다. 스승에게 자기 자리를 물려주는 제자라니, 인생은 가끔 이렇게 짓궂고도 뭉클한 배치를 만든다.
그런데 이야기에는 묘한 꼬리가 달려 있다. 정원희가 그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블리자드는 샌프란시스코의 엔지니어링 인력을 미국 본사로 모두 옮긴다는 방침을 세웠고, 그 방침에 따라 정원희는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러니까 태훈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으나 매니저의 한마디에 막혀버린 그 미국행을, 그의 빈자리에 앉은 스승이 회사의 방침이라는 거대한 조류에 실려 자연스럽게 이루게 된 것이다.
정원희는 회사의 물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넜다. 거대한 조류가 그를 그쪽 기슭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러나 태훈에게는 그런 조류가 없었다. 그를 미국으로 데려다줄 회사의 방침도, 그를 알아봐 줄 본사의 지인도 없었다. 어바인의 문은 그의 눈앞에서 닫혔고, 구글은 그에게 눈빛이 없다고 했다. 누구도 그를 실어 나르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실려 가는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노를 저어 건너는 것. 먼 바다로 홀로 배를 몰고 나가 제 팔로 노를 젓던 어느 늙은 어부처럼, 실어 줄 조류가 없다면 스스로 저어 가면 그만이었다. 평생 그래왔듯, 누가 길을 내어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오래 머물며 스스로 길을 내는 것.
그는 블리자드를 떠나기로 했다. 미국으로 가는 회사의 배에 올라타지 못한 그는, 일단 한국에서 다음 노를 잡기로 했다. 그를 부른 국내의 그 게임 회사, 네오플이었다. 그리고 그 네오플에서 그는, 자신을 마침내 태평양 너머로 데려갈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회사의 조류가 아니라, 한 사람과의 인연이 그의 배가 되어줄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