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서 신승철을 처음 본 것은, 아직 제주로 내려가기 전이었다. 입사 초기, 수도권의 KIDC 데이터센터에서였다.
수많은 서버가 늘어선 그 차가운 방에서, 그는 장비를 설명하고 있었다. 항온항습의 기계음이 끝없이 웅웅거리고, 푸른 LED가 점멸하는 그 공간에서, 신승철은 묘하게 확신에 차 있었다. 자신이 만들고 다루는 것에 대한 확신. 태훈은 그런 사람을 많이 보지 못했다. 세상에는 많이 아는 사람도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가 만드는 것을 깊이 믿는 사람은 드물다. 신승철이 그런 사람이었다.
신승철은 그의 커리어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대기업이라는 거대한 조직 안에서 그를 알아봐 주고, 더 큰 프로젝트로 이끌고, 먼 그가 미국행을 망설일 때 결정적인 조언을 건네줄 사람. 정원희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만난 첫 롤모델이었다면, 신승철은 한국 최고의 무대에서 만난 든든한 동지였다. 인생의 중요한 사람들은 늘, 그가 미처 알아보기 전에 먼저 그의 곁에 와 있었다.
미디어개발팀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 태훈은 카페팀의 블로그 TFT로, 다시 서울로 이동했다.
당시 다음에서 카페팀은 특별한 조직이었다. 한메일과 함께 다음을 떠받치는 양대 기둥. 1999년에 문을 연 다음 카페는, 정치와 종교와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한국 최대의 커뮤니티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 그 안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 막강한 조직이, 블로그라는 새로운 전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는 인터넷의 중심이 빠르게 이동하던 시기였다. 처음에 사람들은 저마다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다음에는 카페로 모여 무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제, 그 무게중심이 다시 개인에게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블로그로 옮겨가고 있었다. 홈페이지에서 커뮤니티로, 커뮤니티에서 다시 개인으로. 마침 2003년, 경쟁사 네이버가 블로그와 카페를 잇따라 내놓으며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 참이었다. 포털들에게 블로그는 양보할 수 없는 새 격전지였고, 다음 역시 자기 블로그를 다시 세워야 했다. 야후 디렉토리 한구석에 자기 한 칸을 만들어 두는 것으로 세상에 다리를 놓았던 한 청년이, 이제 수백만 명에게 저마다의 한 칸을 만들어 주는 일의 한복판에 서게 된 것이다. 그에게 그 일은 단순한 업무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이 가장 외롭던 시절에 붙잡았던 바로 그 구원, 인터넷에 자기 한 칸을 갖는다는 그 감각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카페팀으로 자리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새 팀에서 뭘 하면 되느냐고 묻는 그에게, 신승철은 천천히 적응하면 되니 그동안 이 책이나 읽어보라며 제 책상에 놓인 책 한 권을 건넸다. 검색과 카페와 플래닛을 잇따라 성공시킨, 회사에서 손꼽히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흡입력 있고 재치 넘치는 말투로, 그는 갓 팀을 옮겨온 태훈을 처음부터 동급으로 대했다. 닮고 싶지만 하늘 높이 있던 그 사람이 건넨 책이라, 태훈은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였다.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먼 길을 떠나는 이야기였다. 스페인의 들판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까지, 사막과 오아시스와 숱한 시련을 건넌 끝에, 소년은 마침내 보물이 묻힌 자리를 알았다. 그토록 멀리 찾아 헤맨 그 보물은, 정작 그가 처음 길을 떠났던 자리, 양 떼와 함께 잠들던 낡은 나무 아래에 묻혀 있었다.
태훈은 그 이야기에 오래 붙들렸다. 책은 자아의 신화라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끝내 좇아야 할 자기만의 꿈이 있고, 그 꿈을 향해 길을 나선 자에게는 온 세상이 은밀히 길을 터준다는 것. 길 위에 흩어진 표지를 읽을 줄 아는 자에게, 세상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는 것.
그는 그 책이 자신을 두고 쓴 이야기 같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제 삶에 그 비슷한 일을 해오고 있었으니까. F를 꽃으로, 가난을 자산으로, 꼴찌를 자유로 바꾸어 온 일. 바닥의 사실을 다른 의미로 바꾸어 내던 그 일에, 책은 비로소 이름 하나를 붙여주었다. 연금술.
산티아고처럼 자신도 머지않아 보물을 찾아 가장 먼 바다 건너로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강산이 두 번 바뀐 끝에, 그 보물이 실은 처음 길을 떠났던 자리에 묻혀 있었음을 알게 되리라는 것을. 신승철이 무심히 던진 그 얇은 책 한 권이, 그의 남은 평생에 두고두고 낮게 깔리는 밑그림이 될 줄은.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 외주 인력들이 상당 부분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태훈은 중간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기존 코드를 읽고 적응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기능은 있었고, 코드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화면도 그럭저럭 떴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안쪽이 위태로운 구조였다. 오락실에서 게임의 규칙을 읽고, 수강신청 시스템의 통신을 들여다보고, 느린 조회의 흐름을 종이에 그려보던 그 눈이, 이번에도 코드 너머의 위태로움을 읽어내고 있었다.
어느 늦은 밤이었다. 사무실에는 신승철과 둘만 남아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 형광등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 한참을 말없이 화면을 보던 승철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거 안 되겠는데.
태훈도 같은 생각이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두 사람이 각자 오래 삼켜온 판단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한마디가, 그의 다음 시절을 통째로 끌어올리는 전쟁의 신호탄이 된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했다. 오픈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많은 시간이 흘렀고, 예산도 적지 않게 들어간 뒤였다. 외주 개발물을 걷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버린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둘은 결국 그 길을 택했다. 내부 인력으로 밑바닥부터 다시 쌓아 올리기로 한 것이다.
그날 이후 프로젝트는 전쟁이 되었다. 낮과 밤의 구분이 사라졌다. 출근하고, 코드를 짜고,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코드를 짰다. 데이터센터의 서버와 사무실의 모니터 사이를 오가며, 그들은 없는 것을 손으로 지어 올렸다. 이상하게 힘들수록 재미있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정말로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종이에 부루마불의 칸을 긋던 아이, 종이 건반을 그려 누르던 아이가, 평생 가장 갖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을, 밤을 새워서라도 끝까지 만들 수 있는 자리. 작동의 중독에 처음 빠졌던 그가, 이제 자기 손으로 거대한 작동을 짓고 있었다.
가난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한 가지는 끝내 빼앗지 못했다. 무언가에 미쳐서 몰두하는 능력. 잃을 것이 없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결과를 재지 않고 일에 통째로 자신을 던지는 그 무모함. 그는 그 무모함으로 수강신청 시스템을 뚫었고, 이제 같은 무모함으로 블로그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만든 블로그의 오픈일은, 하필 그의 대학 졸업식 날이었다.
동명정보대학교. 전자공고를 졸업하고 친구 정인준을 따라 얼떨결에 들어왔던 학교. 첫 학기에 반에서 F를 가장 많이 받았던 학교. 등록금이 없어 천장만 바라보다 한 통의 전화로 휴학했던 학교. 수많은 F와 방황과 휴학과 복학과 병역특례를 다 통과하고, 마침내 졸업장을 받는 날이었다. 가지 못한 학교들의 그 긴 목록 끝에서, 그래도 끝내 하나의 졸업장을 손에 쥐는 날. 그것은 결코 작은 날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 그는 사무실에 있었다. 블로그 오픈을 준비하고 있었다.
후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일 수 있다. 평생 가난 때문에 가지 못한 것이 많았던 그에게, 졸업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증명이었을 것이다. 끝내 해냈다는, 끝내 살아남았다는 증명. 그런데 그는 그 증명의 자리에 가는 대신, 무언가를 만드는 자리에 남았다. 그날만큼은, 졸업장을 받는 학생이기보다 서비스를 만드는 개발자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들이 박수를 받으러 갈 때, 그는 끝나지 않은 코드 앞에 남는 사람이었다. 그것은, 한 줄의 거짓 학력 때문에 무너진 아버지를 둔 아들이 무의식중에 내린 결론인줄도 몰랐다. 종이로 증명되는 것보다, 손으로 만들어 낸 것을 믿겠다는.
그날 그는 졸업장 대신 하나의 서비스를 세상에 내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