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특례를 마치고 소집해제가 되자, 그는 다시 떠날 준비를 했다.
애드뱅크 사장은 좋은 조건을 내밀었다. 학비를 지원하고 연봉을 올려주겠다고. 남는 것이 안전했다. 그러나 테헤란로의 빛을 한 번 본 사람은, 작은 항구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는 다시 큰물로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많이 지원했다. 기억으로는 천 곳 가까이였다. 이름을 아는 회사에는 거의 다 이력서를 냈다. 서울로 올라가 면접을 보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오고, 돈이 없어 찜질방에서 자고, 새벽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또 면접을 봤다. 어떤 날은 하루에 네 군데 면접을 보기도 했다. 합격한 곳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늘 그랬듯, 선택지가 많아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움직이다 보니 선택지가 생겼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의 전략은 단순하다. 문이 열릴 때까지, 닥치는 대로 두드리는 것이다.
LG전자 합격 소식도 있었다. 학교 교수가 플래카드를 걸어주겠다고 할 만큼 기뻐했다. 공고를 나와 F를 수두룩하게 받던 학생이 대기업에 붙었으니, 학교로서는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태훈의 마음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당시 한국 인터넷을 대표하던 회사였고, 기술적으로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즐겁게 세상을 변화시키자는 그 회사의 구호는, 이상하게 그의 마음에 잘 맞았다. 무엇보다, 웹을 만지며 살아온 사람으로서 다음은 오래된 동경이었다.
서류가 통과된 것부터가 의아했다. 정식 학위도 아직 없고, 이름난 학교 출신도 아닌 그의 이력서가 어떻게 그 관문을 넘었는지, 그는 지금도 잘 모른다.
면접을 보러 역삼동 데이콤빌딩으로 갔다. 대기실 벽에는 다음 검색엔진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독일 기술이라는 파이어볼이라는 이름을 보며, 그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긴장을 감추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곧 면접관이 들어왔다. 유지형이었다.
면접실로 자리를 옮기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면접관이 시험지를 꺼낸 것이다. 문제는 자바 기초였다. 추상 클래스와 인터페이스의 차이, synchronized 키워드, 스레드 같은 것들. 분명 공부했던 내용이었다. SCJP 자격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 든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는 것과 시험지 위에서 그것을 꺼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그는 그 자리에서 뼈저리게 느꼈다. 그는 단 한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점수는 0점이었다.
면접실을 나오면서 그는 당연히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늘 그랬으니까. 면접에 떨어지는 일에 관해서라면, 그는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합격 통보가 왔다.
그는 지금도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나중에 유지형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도 있다. 돌아온 답은 반쯤 농담 같았다. 철권을 잘할 것 같아서 뽑았다고. 오락실에서 자란 그를 한눈에 알아본 것인지, 그저 0점에 새파랗게 질렸을 신입을 웃겨주려던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시험지는 0점이었어도, 황당할 만큼 당당하던 면담의 공기가 점수보다 크게 작용했다. 유지형은 정답을 잘 맞히는 사람보다, 앞으로 성장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시험지 위의 0점이 아니라, 그 0점을 받고도 면접실을 빠져나가지 않고 끝까지 앉아 있던 태도를 본 듯했다. 면접의 논리 너머에서 무언가가 작동한 순간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그것은 그의 인생에 거듭 찾아온 그 신비한 사건의 또 한 번이었다. 자신의 현재보다, 남이 먼저 자신의 가능성을 본 순간.
정원희가 처음으로 그에게 개발자의 가능성을 비춰주었다면, 유지형은 그 가능성에 한국 최고의 무대를 열어준 사람이었다. 2004년 5월, 대훈은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입사했다. 면접에서 0점을 맞은 개발자가, 한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회사에 들어간 것이다.
그는 이 일을 오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살다 보니 알았다. 인생에는 그런 일이 있다. 시험지의 점수로는 설명되지 않는 문이, 어떤 사람에게는 열린다. 다만 그 문은 아무에게나 열리는 것이 아니라, 0점을 받고도 다음 날 다시 무언가를 시작할 사람에게 열린다. 세상이 그의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떨어지는 일에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가, 때로는 정답보다 멀리 데려간다.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디어본부가 제주도로 이전했다.
그 이전은 단순한 부서 이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음이 즐거운 실험이라 이름 붙인, 한 시대의 대담한 기획이었다. 창업자 이재웅 대표는 수도권 집중의 비효율을 깨고 일과 삶의 균형을 새로 짜겠다며, 본사를 통째로 제주로 옮기는 길고 단계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대표의 명령으로 한 번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의 자발적인 결심을 한 무리씩 끌어내며 천천히 내려가는 방식이었다. 2004년 봄, 선발대 열여섯 명이 제주 애월의 한 펜션에 사무실을 차린 것이 그 시작이었고, 그해 여름 미디어본부가 그 실험의 첫 큰 물결로 합류했다. 수도권 기업의 제주 이전 1호. 다음의 뉴스도, 아고라도, 검색엔진의 도약도 그 제주에서 잉태된다. 그러니까 태훈은, 한국 인터넷 역사에 한 줄로 남을 그 실험의 가장 이른 개척자 무리에, 입사 몇 달 만에 얼떨결에 끼어 있었던 셈이다. 이끼 낀 다라이로 세수하던 소년이, 한 시대의 실험을 가장 앞에서 통과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차에 짐을 싣고, 부산과 성남의 살림을 추슬러 완도항으로 향했다. 배를 타고 제주로 들어갔다. 공항 근처 노형동의 현대해상 건물은 쾌적했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었고, 플레이스테이션이 놓인 게임방까지 있었다. 매일 이런 곳으로 출근한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바다를 건너 게임방이 딸린 사무실로 출근하는 삶이라니. 인생의 풍경이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 그는 가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에 도착한 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오른쪽 다리가 가렵고 부어올랐다. 처음에는 벌레에 물린 줄 알았다. 그러나 반나절 만에 걷기 힘들 정도가 되었고, 결국 구급차에 실려 한라병원에 입원했다. 봉와직염.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수습사원이, 회사보다 병원에 먼저 익숙해지는 꼴이었다. 운이 좋다가도 어김없이 발을 거는 그 짓궂은 흐름이, 또 한 번 그를 시험하고 있었다.
병실에서 그는 자바 책을 다시 펼쳤다. 스레드를 읽고, 가비지 컬렉션을 읽고, 스트럿츠를 읽었다. 회사 회의에서 들었지만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나씩 다시 붙잡았다. 시간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침대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문서를 읽고 예제를 따라 했다. 0점을 받은 자바를, 그는 이제 병실 침대에서 복습하고 있었다. 친구 정헌조가 간호를 도우러 왔다. 오래 갇혀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 그는 결국 퇴원 절차도 제대로 밟지 않고 도망치듯 병원을 나왔다. 이상하게도, 갑갑한 병실을 벗어나자 다리는 오히려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는 늘 그런 식이었다. 갇히는 것을 견디지 못했고, 멈추는 것보다 움직이는 쪽에서 더 빨리 나았다.
회사로 돌아온 뒤, 그는 날개쪽지 프로젝트를 맡았다.
어린이 서비스의 작은 기능이었지만, 그에게는 다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첫 시험대처럼 느껴졌다. 스트럿츠와 XSLT를 결합하고, JDBC와 커넥션 풀링과 쿼리 캐싱을 익혔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해냈다. 모르면 밤을 새워 찾았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붙들었다. 오락실 화면 앞에서, 그리고 전산실의 소스 보기 앞에서 익힌 그 방식, 입력과 출력이 어김없이 연결되는 그 정직한 세계 안에서 끝까지 버티는 방식 그대로였다.
수습 평가 결과, 함께 입사한 다섯 동기 중 살아남은 사람은 그 혼자였다.
면접에서 0점을 맞은 사람, 입사하자마자 병원에 실려 간 사람, 회의에서 단어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던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았다. 정답을 가장 잘 맞히는 사람도, 가장 좋은 학교를 나온 사람도 아니었다. 다만 가장 오래 버틴 사람이었다. 그는 그때 한 가지를 분명히 알았다. 세상은 시험 점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성장은, 재능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것은 새로운 깨달음이 아니었다. 잘해서가 아니라 오래 머물러 첫 직업을 얻었던 그 전산실의 진실이, 한국 최고의 인터넷 회사에서 다시 한번 증명된 것뿐이었다. 꼴찌는 경쟁하지 않는다. 다만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떠나지 않는 자는, 어느 날 문득 살아남은 자가 되어 있다.
그러나 다음에서의 진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한 늦은 밤, 형광등 소리만 들리는 사무실에서 한 선임이 그에게 던질 한마디가, 그의 개발자 인생을 한 단계 끌어올리게 된다. 이거 안 되겠는데. 그 한마디에서, 그의 첫 번째 진짜 전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