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보내고 난 뒤, 그는 부산이 그리워졌다.
부산이라는 장소보다, 그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리웠다. 학교 친구들, 깡소주를 기울이며 웃던 사람들, 자신이 얼마나 못났고 얼마나 자주 포기하려 했는지 다 아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있으면 굳이 대단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다. 마침 LG텔레콤 상주 파견의 사정으로 병역특례 이직 기간이 생겼고, 그는 미뤄둔 졸업을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 가장 오래된 뿌리가 끊긴 자리에서, 그는 본능처럼 사람의 온기가 있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복학한 학교는 이상하게 달라져 있었다. 아니, 학교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달라져 있었다.
1학년과 2학년 때는 강의를 따라가지 못했다. F 학점이 너무 많아 세기도 어려웠고, 전공 수업의 언어는 끝내 그의 것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직장에서 데이터베이스와 자바와 유닉스를 몇 해 동안 손으로 만지고 돌아오니, 강의실의 말들이 갑자기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추상적이기만 하던 단어들이 이제는 그가 밤을 새워 씨름하던 실제 문제의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교수가 쉽게 설명해 주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같은 교수, 같은 교재, 같은 학교였다. 달라진 것은 그였다.
그 무렵 그는 아주 묘한 자신감을 얻었다.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아니었다. 다만 내가 바보는 아니었을 수 있다, 하는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 정도의 생각도 충분히 큰 전환이 된다. 중학교 2학년, 아버지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 앞에서 자기 두뇌를 의심하기 시작한 소년이 있었다. 그 의심은 십 년 가까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제, 현장에서 단련된 한 청년이 그 오래된 의심에 처음으로 반례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나쁜 것이 아니라, 다만 토양이 없었을 뿐이다. 그 생각은 조용했지만, 그의 안에서 무언가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부산에서 그가 들어간 곳은 애드뱅크라는 작은 회사였다. 웹 에이전시였다.
면접은 건물 아래 술집에서 진행되었다. 사무실은 작았고, 분위기는 가족적이었다. 격식이라고는 없는 그 면접이 그에게는 외려 편했다. 대기업의 매끈한 회의실에서 학력으로 사람을 가늠하던 공기와는 정반대였으니까. 그러나 그 작은 회사에서 그는 뜻밖의 것을 얻었다. 처음으로 주도권을 쥐는 경험이었다.
센트럴에스티에서도, 어헤드모바일에서도 그는 누군가가 정해준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애드뱅크에서는 달랐다. 고객과 직접 이야기하고, 일정을 계산하고, 어떤 기술을 쓸지 결정하고,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풀어야 했다. 누구도 정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는 조금씩, 자신이 단순히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이끌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감각을 얻었다. 종이 위에 부루마불의 규칙을 정하던 아이, 없는 게임을 직접 설계하던 아이의 손이, 이제 현실의 프로젝트를 설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작은 웹 에이전시의 일이 폼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일 재떨이를 비우고, 사무실 청소를 했고, 영업을 따라다녔고, 때로는 상사의 운전대까지 잡았다. 개발자라는 직함 하나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작은 회사의 온갖 잡일이 그의 몫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 가지를 조용히 밀어붙였다. 직원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밤이면 학교 수업을 들은 것이다. 그렇게 남몰래 학점을 채워, 병역특례가 끝날 무렵에는 미뤄둔 졸업 학점을 거의 다 메워두었다. 작은 회사의 가장 낮은 잡일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끈질긴 향학열이, 그 시절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 무렵, 서울의 김정은이 가끔 부산으로 내려왔다.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뒤로 둘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서울과 부산 사이의 거리도 그 마음을 갈라놓지는 못했다. 자신을 늘 모자란 사람으로만 보던 그를, 그녀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비추어 주었다. 다만 지금은, 한 청년이 부산의 작은 회사에서 처음으로 어깨를 펴기 시작한 그 짧고 단단한 계절을 이야기할 때다.
2003년 여름의 한 사건은, 그 시절의 태훈을 가장 잘 보여준다.
병역특례 신분으로 회사를 다니며 학교도 함께 다녀야 했던 그는, 야간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 야간 수업의 우선권은 야간반 학생들에게 있었고, 그의 차례가 오면 정작 필요한 수업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 뻔했다. 교무부에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돌아온 답은 원칙이라는 한마디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졸업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다.
수강신청 시스템이 열리던 날, 그는 학교 전산실에 앉았다. 그리고 시스템이 주고받는 통신을 가만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에서 어떤 약속으로 데이터가 오가는지, 그 규칙을 읽어내는 일. 오락실 화면 앞에서 게임의 규칙을 읽어내던 아이가, 종이 위에 자기만의 규칙을 그려 넣던 아이가, 이제 한 시스템의 규칙을 거꾸로 읽어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그는 그 시스템의 빈틈을 찾아냈다. 주간 수업과 야간 수업의 구분을, 시스템이 정작 안쪽에서는 제대로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규칙을 읽는 자에게는, 규칙의 허점도 함께 보인다.
손에 익은 자바로 그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리고 원하던 수업을 모두 신청했다. 그것으로 끝이었어야 했다. 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서울에서 김정은이 내려온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그는 며칠간 거제도로 휴가를 떠났고, 휴대폰은 그만 바닷물을 먹어 고장이 났다. 평소 연락 올 곳도 많지 않던 터라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며칠의 평온이, 폭풍의 눈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는 고장 났던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신호가 잡히자마자 학교에서 연락이 쏟아졌다. 당장 학교로 오라는 것이었다.
도착해 보니 학교는 아수라장이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램이 든 디스켓이 전산실에 남아 있었고, 누군가 그것을 복사해 퍼뜨린 모양이었다. 전교생의 절반 이상이 그 프로그램을 썼다고 했다. 수강신청은 꼬일 대로 꼬였고, 시스템은 엉망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는, 그 모든 일의 출발점인 범인을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그는 학과장 사무실로 불려갔다. 반성문을 쓰라고 했다. 잘 써도 징계를 면하기 어렵고, 최악의 경우 퇴학도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가지 못한 학교들의 긴 목록 끝에 간신히 붙잡은 이 졸업장마저, 이렇게 날아갈 판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정말 무서우면, 이상하게 용감해질 때가 있다. 잃을 것이 바닥까지 드러난 자리에서, 그는 오히려 담담해졌다. 그는 자신의 개인 사정을 끝내 헤아려 주지 않은 학교의 무정함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신청한 수업이 취소된다면, 학생의 통신을 그대로 노출한 채 방치한 학교의 허술한 보안을 언론과 교육 당국에 알리겠다고 했다. 협박이라기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자의 마지막 카드였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배가 고프니, 짜장면을 시켜달라고.
중학교 졸업식 날, 가지 못한 학교들의 목록 끝에서 아버지와 동생과 셋이 둘러앉아 먹던 그 짜장면이 떠올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번의 짜장면은 막막함의 음식이 아니라, 배짱의 음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짜장면이 왔고, 그의 요구도 받아들여졌다. 학교는 재발 방지를 약속받는 조건으로 그를 징계하지 않았다. 친구 정명재에게 들은 바로는, 동기들의 탄원도 있었다고 한다. 정확한 진실은 세월 속에 흐릿하지만, 그는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동기들에게 고맙고, 결국 그를 품어준 학교에도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 사건은 그의 영리함과 무모함, 그리고 이상하게 끼어드는 운이 한데 뒤섞인 장면이었다. 시스템의 규칙을 읽어내는 머리, 결과를 미리 재지 않고 일단 저지르는 무모함, 그리고 막다른 자리에서 살길이 열리는 행운. 규칙을 읽고, 빈틈으로 몸을 던지고, 끝내 살아남는 일. 그는 그때도 그렇게 했다.
병역특례를 마칠 무렵, 애드뱅크 사장은 좋은 조건을 제안했다. 연봉을 두 배로 올려주고, 대학원 학비까지 대주겠다는 것이었다. 남는 것이 안전했다. 작은 회사였지만 그를 알아주는 곳이었고, 처음으로 어깨를 펴게 해준 곳이었다.
그러나 태훈은 이미 서울을 한 번 맛본 사람이었다. 테헤란로의 빛을 보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오라클의 간판이 늘어선 거리를 걸어보았고, 큰물이라는 말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었다. 안전한 자리는 그를 오래 붙잡지 못했다. 잘하게 된 곳을 떠나 다시 낯선 바닥으로 가는 것, 그것은 이미 그의 오래된 습성이었다. 꼴찌에 익숙한 사람은, 익숙해진 자리가 외려 불편하다.
그는 다시 떠나기로 했다. 이번에 그가 두드리려는 문은, 당시 한국 인터넷을 대표하던 회사였다. 0점짜리 면접지 한 장이, 그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