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그는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영어는 충분하지 않았고, 미국 경력은 없었고, 실패하면 돌아올 계획도 뚜렷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돌아올 계획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돌아올 생각으로 떠난 것에 가까웠다. 그도 아내도 숨피라는 회사에도, 미국 생활에도 확신이 없었다. 그저 잠시 다녀오는 것, 길어야 얼마간 머물다 돌아오는 것. 그렇게 마음먹었기에 짐도 단출했고, 각오도 비장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민이라기보다 긴 출장에 가까운 마음이었다. 한국을 떠나는 사람의 그 흔한 결연함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런데 도착한 그를 기다린 것은, 그 가벼운 마음과는 사뭇 다른 환대였다.
조이스는 그와 아내를 사무실로 데려가는 대신, 트윈픽스로 데려갔다. 차가 언덕길을 오를수록 도시는 발아래로 내려앉았다. 회색빛 집들이 언덕을 따라 겹겹이 놓였고, 길들은 바다 쪽으로 흘렀다. 멀리 다리가 보였고, 햇빛을 받은 창문들이 작게 반짝였다. 그날은 안개도 바람도 거의 없어, 정상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환했다. 조이스가 말했다. 여기가 태훈의 제2의 Home이야.
Home. 그 단어가 이상하게 가슴에 박혔다. 고향이 어디냐는 물음에 그는 늘 대답이 궁했다. 출생지는 마산이었지만 기억이 없었고, 서울과 부산과 제주 어디에도 마음의 닻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아직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도시를 누군가 집이라 불러준 것이다. 조금 이상했고, 조금 우스웠고, 조금 과장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벅찼다.
다만 그 순간, 그의 속마음은 조이스의 말과 어긋나 있었다. 그는 이곳을 집이라 여기지 않았다. 잠시 머물다 갈 낯선 도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고향이라니, 아직 첫 번째 고향도 정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 말은 너무 멀고 너무 큰 단어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좋은 말이네, 그래도 나는 곧 돌아갈 텐데. 인생의 가장 큰 아이러니 하나가, 바로 그 트윈픽스 정상에서 조용히 씨앗을 묻고 있었다. 그가 잠시 다녀오려 한 그 도시가, 그가 떠났다가 몇 번이고 다시 돌아오게 되는 곳이 되리라는 것. 곧 돌아갈 줄 알았던 그 도시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긴 한 시절의 무대가 되리라는 것. 돌아갈 줄 알았던 도시는, 그렇게 그를 오래 붙잡게 된다.
첫 일주일은 다운타운 호텔에서 지냈다. 조이스는 정착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그는 곧 포스 앤 킹 인근 아발론 아파트의 스튜디오에 아내와 둘이 살림을 차렸다. 월세 2천 달러는 비쌌지만 미국 연봉으로 간신히 감당할 만했다. 신식 건물이라 한국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아, 적응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응이 어렵지 않은 것과, 마음을 붙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곧 돌아갈 거라고 믿는 사람의 살림에는, 어딘가 가방을 다 풀지 않은 구석이 있다. 무엇을 깊이 들이지 않고, 무엇에 오래 마음을 두지 않는다. 어차피 잠시일 테니까. 아내도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은 한쪽 발은 샌프란시스코에, 다른 한쪽 발은 여전히 태평양 건너 한국에 두고 있었다. 잠깐인데 뭐, 하고 서로를 다독이면서.
그러나 한참 뒤에야 그들은 알았다. 곧 돌아갈 줄 알고 풀지 않았던 그 가방을, 결국 풀지 않은 채로 이 도시에서 가장 긴 세월을 보내게 되리라는 것을.
그가 합류한 숨피는, 사실 얼마 전까지 회사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숨피는 본래 한 개인이 취미로 운영하던 웹사이트였다. 한국의 대중문화, 드라마와 가요와 연예인 소식을 해외의 팬들에게 전하던 작은 공간. 그것을 조이스 김이 어엿한 기업으로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아 그녀가 대표가 되었고, 취미의 공간을 사업의 무대로 바꾸는 한복판이었다. 그러니까 태훈은 잘 갖춰진 회사에 입사한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맨손으로 빚어내고 있던, 이제 막 회사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무언가에 올라탄 것이다. 그는 태평양을 건너, 한 팬 사이트가 기업으로 태어나는 그 산통의 순간에 합류한 셈이었다.
회사는 작았다. 공동창업자 둘과 태훈, 콘텐츠 담당자 멜로디 정도가 정직원의 전부였다. 회의실도 변변치 않았다. 누군가는 콘텐츠를 올리고, 누군가는 광고를 붙이고, 누군가는 서버를 고쳤다. 그는 가리는 것 없이 전방위로 개발했다. 야후 디렉토리에 자기 한 칸을 만들던 스무 살의 그가, 이제 수많은 팬들의 한 칸을 떠받치는 서버를 손보고 있었다. 영어도 생각만큼 큰 장벽은 아니었다. 조이스와 동료 수잔 강은 교포였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미국에 왔지만 완전히 낯선 세계에 던져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돌아갈 줄 알았던 그가 이 도시를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이유였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원들과 인턴, 그 가족과 연인들이 다 함께 자이언츠 경기를 보러 갔다. 마침 미국에 놀러 와 있던 처남도 함께였다.
야구장의 환한 조명, 베이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맥주, 웃고 떠드는 사람들. 영어와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뒤섞여 들렸다. 응원의 함성 속에서,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 여기서도 살 수 있겠구나.
그것은 작은 깨달음이었지만, 그에게는 의미가 컸다. 곧 돌아갈 줄로만 알았던 도시에서, 처음으로 머무는 삶을 상상해 본 순간이었으니까. 2002년의 그 붉은 함성 속에서 어머니를 잃고 홀로 슬펐던 그가, 8년 뒤 태평양 건너 다른 함성 속에서 처음으로 이곳에서의 삶을 떠올린 것이다. 함성은 같은 함성이 아니었다. 하나는 상실의 배경음이었고, 하나는 정착의 첫 신호였다. 가방을 다 풀지 않았던 사람의 마음에, 그날 작은 빗장 하나가 풀렸다.
그러나 숨피의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한국 콘텐츠를 해외에 유통하려던 사업은 라이선스의 벽에 부딪혔고, 회사는 한국의 엔써즈에 인수되었다. 태훈은 연말 캘리포니아 로드트립을 다녀온 직후 정리해고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 온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는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돌아갈 줄 알았던 그 마음이, 이번에는 진짜 현실이 되는 듯했다. 트윈픽스에서의 그 짧은 환대로 끝날 인연인가 싶었다.
그런데 같은 사무실을 쓰던 한 회사가 손을 내밀었다. 컨테이전트였다. 며칠 만에 결정이 났고, 연봉도 올랐다. 미국 생활 최대의 위기가 될 뻔한 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가 버렸다. 한국에서라면 회사가 무너지는 일은 곧 생계의 벼랑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한 회사가 사라지는 일과 한 엔지니어의 가치가 사라지는 일이, 별개의 일처럼 다뤄졌다. 그 차이를 그는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진짜 실리콘밸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그리고 곧 돌아갈 줄 알았던 그 도시가, 종이상자 하나와 함께 그에게 가장 깊은 절망과 가장 뜻밖의 구원을 동시에 안겨주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