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쿠팡을 떠나며 그는 마침내 한국에 제 집을 샀다. 판교에.
판교라는 이름은, 그의 인생에 오래 맺혀 있던 매듭이었다. 청약에 떨어졌던 그 도시, 신혼 전세집이었고, 세입자로 돌아와 살았던 그 도시.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그 좌절의 전세금을 들고 태평양을 건너 헤이워드에 미국에서의 첫 집을 마련했던 그가, 강산이 두 번 바뀐 끝에 자신을 떨어뜨렸던 바로 그 도시에 제 집을 갖게 된 것이다. 판교에서 갖지 못한 집의 보증금이 미국의 집이 되었고, 그 미국을 한참 돌아 마침내 다시 판교로, 이번에는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집을 가진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은 그렇게 한 바퀴를 빙 돌아 제자리를 찾았다. 안 되면 돌아서던 사람이, 판교에 관해서만큼은 끝내 돌아오고야 마는 사람이었다.
오래전 신승철이 던져준 「연금술사」의 마지막 장이, 그제야 그의 삶 위로 겹쳐졌다. 산티아고의 보물이 그가 처음 길을 떠난 자리에 묻혀 있었듯, 그의 보물도 그가 가장 먼저 꿈꾸었던 자리, 그를 한 번 떨어뜨렸던 바로 그 도시에 묻혀 있었다. 그것을 손에 쥐기 위해, 그는 태평양을 건너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와야 했다.
그가 고른 집은 서판교의 끝자락에 있었다. 바로 앞으로 운중천이 흘렀다. 청계산이 멀지 않아 산에서 내려온 바람이 동네를 씻고 지나갔고, 개천을 따라 산책로와 공원이 길게 이어졌다. 길은 널찍하고 동네는 차분했다. 집 앞에는 일린이가 전학 온 외국인학교의 셔틀버스가 와서 섰다. 아침마다 빛이라 이름 붙인 그 아이가, 제집 앞에서 가방을 메고 셔틀에 오르는 풍경. 단어를 잃고 헤매던 아이가, 이제 모국의 한 동네에 발을 딛고 학교를 오갔다. 그리고 조금만 걸으면 운중동 먹거리촌의 초입이었다. 일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설 수 있는, 그런 평범한 동네의 한 자리.
집의 크기는 84제곱미터였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이다.
미국에서 그는 큰 집에 살았다. 헤이워드의 차고 딸린 3층 타운하우스, 밀피타스의 더 큰 새집. 화장실이 셋이나 되던, 남의 마당 화장실을 지나던 아이에게는 대궐 같던 집들. 한때 그에게 집의 크기는 곧 그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를 재는 자였다. 그런데 쿠팡 시절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그 집을 거치며, 그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아주 큰 집이 아니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넓이가 삶의 질을 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굳이 큰 집을 고르지 않았다. 가족이 발 뻗고 살기에 알맞은, 운중천이 보이고 아이의 셔틀이 서고 먹거리촌이 가까운, 그만하면 충분한 집을 골랐다.
그것은 단순한 평수의 선택이 아니었다. 더 큰 것, 더 높은 것, 더 많은 것을 향해 평생을 달려온 한 사람이, 마침내 충분함의 충분함을 알게 된 자리였다.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소년에게 삶 자체가 덤이었듯, 이제 그에게는 알맞은 집 한 채와 가족과 저녁이 있는 평범한 일상이, 더 바랄 것 없는 충분함이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가장 높은 곳의 야경까지 보고 온 사람이, 그 끝에서 고른 것은 가장 화려한 집이 아니라 가장 알맞은 집이었다.
그렇게 그는, 마침내 가방을 풀었다.
곧 돌아갈 줄 알고 샌프란시스코에서 가방을 다 풀지 않던 사람. 정착하러 한국에 돌아와서도 호텔방에서 또 짐을 풀지 못하던 사람. 평생 마산에서 가리봉동으로, 부산으로, 서울로, 제주로, 샌프란시스코로, 다시 서울로, 항구에서 항구로 떠돌던 갈매기. 그 갈매기가 마침내, 한 도시의 끝자락 개천가에 내려앉아 가방을 풀었다.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머물기 위해서.
그곳이 판교였다는 것은,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판교(板橋), 널빤지로 놓은 다리. 그는 평생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되고자 했다. 한국과 실리콘밸리, 모국어의 땅과 새 언어의 땅, 가난했던 과거와 닿은 현재 사이에. 그리고 그 모든 오고 감의 끝에서, 그는 다리라는 이름의 도시에 집을 짓고 내려앉았다. 두 기슭 사이에 놓인 다리 위. 그것이 그가 평생을 돌아 끝내 도착한, 그의 자리였다.
그리고 그는 매일 아침, 그 다리의 집에서 나와 테헤란로로 향한다. 스무 살의 그가 처음 코드를 짜던 거리, 그의 사회생활이 시작된 그 자리로. 서판교의 개천가에서 강남의 한복판까지, 그 출퇴근길은 단순한 통근이 아니라 그의 평생을 압축한 행로였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한 거리로, 이제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이 되어 매일 다리를 건너 오간다. 판교에 살며 테헤란로로 일하러 가는 일. 그것은 그가 평생 해온 일, 곧 두 세계 사이를 잇는 다리를 건너는 일의, 가장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운중천은 집 앞에서 묵묵히 흘렀다. 마산 앞바다처럼, 부산의 항구처럼, 샌프란시스코의 베이처럼, 한강처럼. 평생 그를 따라다닌 그 물이, 이제는 그가 정착한 집의 창밖에서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떠도는 자의 물이 아니라, 머무는 자의 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