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을 떠나기로 했을 때, 오랜만에 만난 한 동료가 물었다. 그래서, 다음은 어디로 가세요. 그가 회사 이름을 말하자, 상대는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거기요? 왜요?
충분히 그럴 만한 반응이었다. 라포랩스. 4050 여성을 위한 패션 플랫폼 퀸잇을 만드는 회사. 실리콘밸리와 쿠팡에서 세계적 규모의 엔지니어링을 다루던 사람이 향하기에는, 너무 작고 너무 평범해 보이는 선택이었으니까. 사실 태훈 자신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그런 여성 쇼핑앱 중 하나겠거니. 그러나 자료를 한 장 한 장 읽어갈수록, 그 첫인상은 무너졌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한 줄의 데이터였다. 퀸잇 사용자의 상당수가, 휴대폰 글자 크기를 기본보다 크게 키워서 쓰고 있었다.
그 숫자 뒤에는, 다름 아닌 그 자신과 같은 세대의 얼굴이 있었다. 1979년생인 그도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긴 사람이었다. 작은 글씨가 예전 같지 않아 화면을 조금 멀리 들게 되고, 휴대폰 설정에서 글자를 한 단계 키워두게 되는 나이. 젊은 세대를 위한 날렵한 쇼핑앱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바로 그 4050 세대가 퀸잇의 고객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남의 시장이 아니라, 그가 속한 세대의 시장이었다. 화려한 청년들의 무대 바깥에 선 사람들. 평생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세상이 잘 봐주지 않던 자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아온 그에게, 거기에는 외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회사는, 작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빠르게 성장하며 사업의 영역을 넓혀가는, 작은 초기 스타트업도 아니고 정비된 대기업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역동적인 한복판에 놓인 조직이었다. 중견의 복잡도를 감당하면서도 스타트업의 속도를 잃지 말아야 하는, 공학적으로 가장 까다로운 구간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을 최종적으로 움직인 것은, 사업의 규모도 성장의 속도도 아니었다. 그 조직이 일하는 방식이었다.
많은 회사가 자율을 말한다. 그러나 대개 그 자율은 구호로 끝난다. 라포랩스는 달랐다. 자율성과 정렬 사이의 피할 수 없는 긴장을, 회피하지 않고 제도와 구조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었다. 자율이라는 단어가 벽에 붙은 표어로 머물지 않고, 매일의 의사결정 구조 속으로 내려와 있는 흔적.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것,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일하는 그 문화가, 이 작은 한국 회사 안에서 제도로 뿌리내리려 애쓰고 있었다. 두 물을 다 헤엄쳐본 그가 한국에 옮겨 심고 싶어 했던 바로 그것을, 누군가 이미 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조직이 딛고 서는 땅이, 바로 커머스 플랫폼이었다. 주문, 결제, 정산, 물류, 혜택. 모든 팀이 공통으로 기대고 서는 코어 도메인. 화면에 보이는 화려한 기능이 아니라, 그 모든 기능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떠받치는 바닥. 그는 평생, 가장 아래에서 전체를 떠받치는 그런 자리에 묘하게 끌리는 사람이었다. 자율성은 공짜로 오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 자율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책임져야 한다. 옐프의 플랫폼 팀에서 그랬듯, 그는 또 한 번 그 바닥을 짓는 일에 마음이 갔다.
그는 그 역할을 맡기로 했다. 커머스 플랫폼 팀 리더.
돌아보면 그것은, 또 한 번 좋은 것을 버리는 선택이었다. 쿠팡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집과 달러 급여와 온갖 안정된 대우로 그를 품어준 곳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큰 회사가 보장하는 편안함을 담담히 내려놓았다. 남들이 보기에 또 한 번 미련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평생, 안락한 자리보다 심장이 뛰는 자리를 택해온 사람이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직함은 리더였다. 그러나 그가 이 자리를 받아들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리더로 굳어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는 네이버에서 소질도 관심도 없는 관리자를 떠맡고 메말라 본 사람이었고, 쿠팡 이후에는 동료를 관리하기보다 직접 문제를 푸는 쪽에 남고 싶다고 분명히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자리는 달랐다. 아키텍처를 고민하고, 필요하면 직접 코드에 손을 대고, 팀의 기술적 문화를 함께 세우는 일. 군림하는 상사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짓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 자리였다. 실리콘밸리와 쿠팡에서 익힌 글로벌 스케일의 감각을, 훨씬 더 작지만 훨씬 더 밀도 높은 영향 범위에서 펼쳐보는 일.
첫 몇 주 동안, 그는 코드베이스와 씨름했다. 고쳐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의 목록이 빠르게 쌓여갔다.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좋았다. 자신의 선택이 곧바로 책임으로 이어지는 그 감각을, 그는 오랜만에 다시 느끼고 있었다. 잘 정비된 거대한 배의 선임 항해사로 남는 대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배의 설계도에 직접 손을 대는 사람. 센트럴에스티의 지하방에서 처음 맛본 그 작동의 중독이, 이십 몇 년이 지난 한 사무실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 사무실이 테헤란로에 있다는 것은, 묘한 회귀였다. 스무 살의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무대가 바로 이 거리였다. 닷컴버블의 열기 속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첫 코드를 짜던 그 테헤란로. 강산이 두 번 바뀌고, 태평양을 두 번 건너고, 검색과 게임과 자율주행과 물류를 다 거친 끝에, 그는 자신이 출발했던 바로 그 거리로 돌아와 다시 코드를 짜고 있었다. 떠났던 자가 돌아와 같은 자리에 서지만,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 거리를 처음 걷던 청년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조차 몰랐고, 다시 그 거리에 선 사내는 두 세계의 물을 다 헤엄쳐본 사람이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지만, 그는 같은 거리에 두 번 섰다. 강물은 그새 흘러갔고, 그 자신도 흘러왔다.
거기요, 왜요, 라고 물었던 그 동료의 질문에, 그는 이제 답할 수 있었다. 그 답은 한 문장이 아니라, 그가 평생 헤엄쳐온 모든 물을 한 줄로 꿴 것이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가장 공평한 물을 찾아 태평양을 건너고, 두 세계를 다 헤엄쳐본 끝에, 그 두 물을 잇는 다리가 되기로 한 사람. 그가 라포랩스로 간 이유는, 결국 그 다리를 가장 밀도 높게 놓을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