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한 사람의 인생을 회사 이름으로 기억한다. 다음, 네이버, 블리자드, 우버, 죽스, 쿠팡. 화려한 간판들이 한 줄로 늘어선다. 그러나 태훈에게 남은 것은,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다.
달동네 집에 몸을 뉘었을 때 걸려온 김성수 이사의 전화 한 통이 그를 개발의 세계로 밀어 넣었다. 정원희의 한마디가 그를 옐프로 데려갔고, 거울처럼 마주 선 그 인연은 평생을 갔다. 김정은의 시선은 그가 스스로를 믿기 한참 전부터 그를 믿어주었다. 신승철의 인정이 있었고, 애런과의 긴 우정이 회사를 옮길 때마다 그의 곁에 있었다. 안상희의 소개가 삼성으로 가는 문을 열었고, 칼 퀸의 첫날은 단 하루였지만 평생 그의 안에 남았다. 조시의 지지가 갈림길마다 그의 등을 밀어주었고, 박나용과의 커피가 거대한 회사의 한복판을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어주었다. 회사들은 사라지고, 이름이 바뀌고, 전성기를 지나간다. 그러나 사람은 남는다. 그가 평생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믿어온 이유가, 거기 있었다.
그러니 혹시 이 긴 이야기가 한 사람이 홀로 일군 성취처럼 읽혔다면, 그것은 이 기록의 잘못이다. 그는 혼자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그의 곁에는 늘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를 믿어준 사람, 그를 끌어준 사람, 그를 기억해준 사람. 그가 헤엄쳐온 그 모든 물에는, 함께 헤엄쳐준 이들의 그림자가 어려 있었다.
언젠가 강연을 마치고 질문을 받던 자리였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결국 운이 좋으셨던 것 아닌가요.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도 웃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운도 있었다. 그는 그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닷컴버블이 아니었다면 첫 취업은 없었을지 모른다. 숨피가 아니었다면 샌프란시스코도 없었을 것이다. 컨테이전트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킥스아이도 없었고, 킥스아이가 없었다면 삼성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항로를 결정적으로 바꾼 길목마다, 그가 어찌할 수 없는 운이 작용했다.
그러나 운은 언제나 좋은 얼굴로만 오지 않았다. 어떤 운은 정리해고였고, 어떤 운은 뼈아픈 실패였고, 어떤 운은 도망처럼 보였다. 종이상자를 들고 사무실을 나서던 날의 그 막막함도, 돌아보면 그를 다음 자리로 떠민 운이었다. 그러니 그가 한 일은, 사실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운이 왔을 때, 비록 완벽히 준비되어 있지 않았어도 도망가지 않은 것. 그저 그것뿐이었다. 자격이 갖춰지기 전에 자리에 먼저 앉고, 앉은 뒤에 그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어간 평생. 그것은 어쩌면,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그만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운은 통제할 수 없다. 다만 운이 찾아왔을 때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남아 있을 수는 있다. 그가 평생 한 일이 있다면, 그것뿐이었다.
가족도 그의 항로를 바꾸었다.
김정은은 오래전부터, 그가 미처 보지 못한 그를 보았다.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청년의 곁을 지켜준 사람. 그가 자신을 믿지 못할 때조차 그를 믿어준 거울. 그리고 일린이는, 그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되었다. 아이가 한국어 단어를 찾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 순간, 그는 기술이나 커리어보다 훨씬 오래 남을 질문 앞에 섰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어떤 언어로 사랑하고, 어떤 문화 속에서 자랄 것인가. 좋은 엔지니어가 되는 것만큼이나, 좋은 남편과 좋은 아버지가 되는 일도 중요했다. 아니, 그에게는 그쪽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언젠가 그는, 딸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줄 수 있다면, 가난을 물려주고 싶다고.
오해하기 쉬운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은 이랬다. 가난이 짐이 된 적도 분명히 있었다. 차비가 없어 학교를 못 가고, 콩나물 한 줌을 외상으로 달라다 빈손으로 돌아서던 시절. 그러나 돌아보면, 그가 가진 가장 큰 재산은 바로 그 가난으로 인해 더 배운 것들이 아닌가 싶었다. 없었기에 간절했고, 낮았기에 남의 자리의 사정을 알았고, 잃을 것이 없었기에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다. 가난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동시에 그를 만든 거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딸에게 진짜 가난을 물려줄 생각은 없을 것이다. 다만 가난이 그에게 가르쳐준 그 단단함만은, 빛이라 이름 붙인 그 아이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랐을 것이다. 거친 세상 속에서도 태양처럼 단단하기를. 없이도 간절할 줄 알고, 낮은 자리도 부끄러워하지 않기를. 이 책이 처음부터 딸에게 보내는 긴 편지였던 이유가, 거기 있었다.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 남았다고 했지만, 끝내 닿지 못한 사람도 있다.
아버지다. 평생 그를 두렵게 하던 그 사람은, 이제 부산에 홀로 늙어가고 있다. 곁에 아무도 없다. 한동안 태훈은 일린이를 데리고 가끔 부산으로 내려갔다. 손녀에게 할아버지를 보여주고 싶었고, 아버지에게도 그 정도의 도리는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만남은 늘 어긋났다. 동생이 오래전 심어놓은 거짓을 아버지는 여태 진실로 믿고 있었고, 그 왜곡된 기억은 자꾸 아들을 밀어냈다. 어린 일린이가 보는 앞에서도 언성이 높아지는 일이 거듭되자, 태훈은 끝내 발길을 끊었다. 이제는 안부조차 직접 여쭙지 않는다.
그러나 완전히 등을 돌리지도 못했다. 그는 아버지의 요양보호사와 조용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비용을 대는 것으로 그 끊어진 자리를 간신히 잇고 있다. 직접 닿지는 못하고, 사람을 건너 닿는 안부. 미워하기에는 그를 버리지 않고 키워준 세월이 있었고, 사랑하기에는 받은 상처가 너무 깊었다. 그 애증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문을 닫지도 열지도 못한 채 서 있다.
기이한 일이다. 아버지의 삶은 한 줄의 거짓 학력으로 무너졌고, 그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또 다른 거짓들로 갈라섰다. 거짓이 한 사람의 생을 양쪽에서 베어낸 셈이다. 평생 두 세계를 잇는 다리가 되고자 했던 그가 끝내 놓지 못한 다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부산의 그 늙은 아버지에게로 가는 다리였다. 그 다리만은, 그는 아직 건너지 못했다.
이 책은 무거운 이야기였다. 가난과 죽음과 배신과 떠돎. 그런데 정작 그 모든 것을 통과해 온 사람을 직접 만나보면, 뜻밖의 인상을 받게 된다.
그는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다.
딸에게도, 아내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직장 동료들에게도, 그는 늘 웃고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아재개그를 남발한다. 망고빙수를 먹으러 간 자리에서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아빠는 그거 못 먹어, 망고(man go)니까. 쿠팡 시절 같은 아파트에 살던 외국인 동료가 이 동네 쌀국수(Pho) 맛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는 또 이렇게 답했다. 여기는 없어, 반포(Ban Pho)니까. 누가 흙수저가 어떻게 실리콘밸리까지 갔냐고 놀리면, 흙의 주성분이 규소이고 규소가 곧 실리콘이니 자기야말로 애초에 실리콘밸리 체질 아니겠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듣는 사람이 웃든 신음하든 개의치 않는, 천하태평의 농담들이다.
무엇보다 그는 화를 내지 않는다. 그가 화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 그를 아는 사람들을 따라다닌다. 세상에서 가장 화낼 이유가 많았던 인생을 산 사람이 말이다. 잔소리와 꾸지람이 많던 어머니와도, 평생 그를 두렵게만 하던 아버지와도, 그는 정반대였다. 그는 언성을 높이지 않는다. 일린이가 무언가를 쏟거나 망가뜨려도 좀처럼 목소리를 키우지 않는다. 두려움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 제 딸에게만은 두려운 사람이 되지 않기로 한 것이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누군가 큰 실수로 서비스를 멈추게 하고 모두가 얼어붙은 순간에도, 그는 다그치는 대신 농담 한마디로 굳은 공기를 풀어버린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시작해 0점도 맞아본 사람이, 어떻게 실수한 사람을 몰아세울 수 있겠는가. 그 자리에 누구보다 자주 서 봤으니까.
그 가벼움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었다. 한 끼를 굶고 다음 끼를 먹어본 사람은 밥 한 그릇에도 감사할 줄 알았다.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사람은 작은 것 하나에도 감탄했다. 그렇게 매사에 감사하다 보니, 사람이 자꾸 가벼워지고 긍정적으로 변했다. 무거운 과거가, 역설적으로 그를 가볍게 만든 셈이다.
지금의 그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한국의 회사원이다. 주중에는 이른 아침에 일어나 부산스럽게 채비하고 출근하고, 주말이면 가족과 율동공원이나 중앙공원을 걷고, 판교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판교 현대백화점에서 시간을 보낸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일상이다. 그러나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그 소년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평범함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돌아 끝내 도착한 가장 큰 성취임을 안다. 그 모든 무게를 다 통과하고도, 끝내 아재개그나 던지는 가볍고 평범한 한 사람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 그것이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환한 결말이다.
그리고 만약, 스무 살의 자신에게 한마디 건넬 수 있다면.
천마산 자락의 셋방에서,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그 청년에게. 세상이 너무 좁고 어두워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그 소년에게. 그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다른 세상도 있단다. 네가 아는 그 좁은 세상이 전부가 아니야. 그러니 한 번만, 그 바깥으로 나가보렴. 거기에는 네가 상상하지 못한 물이, 네가 헤엄칠 수 있는 더 넓은 바다가 있단다.
그 말은 어쩌면, 지금도 어느 좁은 방 안에서 스무 살의 그처럼 웅크리고 있을 누군가를 향한 것이기도 했다. 흙수저로 태어나, 꼴찌에 가까운 자리에서, 많은 것을 일찌감치 포기한 채 살아가는 누군가. 그래서 그는 블로그를 쓰고, 더러 강연 자리에도 섰다. 자신이 지나온 길을 굳이 꺼내 보이면서. 잘난 사람의 성공담으로서가 아니라, 여기 나처럼 별것 없이 시작해 어찌어찌 흘러온 사람도 있다는, 그 한 가지를 남겨두고 싶어서였다.
누군가는 이제 목표를 이룬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실리콘밸리도, 우버도, 아마존도, 쿠팡도, 단 한 번도 목표였던 적이 없었으니까. 대부분은 우연히 찾아왔고, 호기심을 따라갔고, 사람을 따라 움직였고, 실패를 지나 어찌어찌 도착한 곳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인생은, 등산보다 항해에 가까웠다. 미리 정해둔 정상에 깃발을 꽂는 일이 아니라, 바람이 바뀌면 돛을 조정하고, 때로는 표류하고, 때로는 어느 항구에 정박했다가, 다시 닻을 올려 떠나는 일. 어디에 닿을지 모른 채, 다만 물을 읽으며 나아가는 일.
지금 그는 또 한 번, 새로운 세계 앞에 서 있다. 인공지능과 커머스, 그와 같은 세대의 소비, 사람을 대신해 움직이는 새로운 상거래, 한국이라는 토양 위의 플랫폼. 처음 인터넷을 보았을 때처럼, 모바일을 보았을 때처럼, 클라우드와 자율주행을 보았을 때처럼, 이번에도 그는 그것의 정체를 완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냄새를 맡는다. 무언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냄새. 그리고 자신이 또 그 변화의 한복판에서, 늘 그래왔듯 곁눈질로 무언가를 배우게 되리라는 예감.
달동네 단칸방 마루에서 부산항을 내려다보던 아이는, 생각보다 멀리 왔다. 테헤란로를 지나고, 트윈픽스에서 샌프란시스코를 내려다보고, 555 마켓 스트리트의 어두운 사무실에서 세계 규모의 문제와 마주했고, 운전자 없는 차와 한 나라의 새벽 배송을 짓는 일을 거쳐, 판교라는 다리 위에 제 집을 짓고 내려앉았다.
네이버 시절 그의 가슴을 찔렀던 그 졸업식 축사를, 그는 평생 품고 살았다. 계속 찾으라, 안주하지 말라. 그리고 그 축사의 마지막 말, 스테이 헝그리, 스테이 풀리시. 젊었을 때 그 말들은, 대담하게 도전하라는 뜻으로 읽혔다. 안주하지 말고 과감하게 지르라는 뜻. 그러나 지금의 그는 그 말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다. 다 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뜻. 배움이 끝났다고 여기지 말라는 뜻. 세상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 가장 높이 나는 갈매기가 가장 멀리 본다지만, 가장 멀리 본 갈매기조차 끝내 다 보지는 못한다. 그래서 갈매기는 다시 난다. 더 높이 날수록, 아직 못 본 하늘이 더 넓다는 것을 알게 될 뿐이다.
그러니 그는 여전히, 모르는 것이 많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다행이라 여긴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행은 끝나버리니까. 갈매기는 한 항구에 영영 머무는 새가 아니다. 먹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일 그 자체를 위해 날던 그 새처럼, 그는 지금도 다음 바람을 기다린다. 비록 운중천가에 잠시 가방을 풀고 내려앉았지만, 그의 두 날개는 여전히 다음 상승기류를 향해 열려 있다. 잘나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았고,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고, 죽지 못해 버티다 어찌어찌 흘러온 한 사람의 이야기는, 그러므로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남부민동에서 부산항을 내려다보며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그 소년에게, 마흔을 넘긴 그가 끝내 들려주고 싶은 말은 처음과 같다. 다른 세상도 있단다. 그러니 한 번만, 날아보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