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산 자락의 그 재래식 부엌에는 늘 다라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제한급수 때문이었다. 고지대의 그 동네는 물이 귀해, 정해진 시간에 나오는 물을 받아두지 않으면 하루를 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라이는 늘 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러나 받아둔 물은 흐르지 않는 물이었고, 흐르지 않는 물에는 며칠이 지나면 어김없이 이끼가 끼었다. 그 미끄럽고 푸른 기운이 도는 물로, 그는 세수를 하고, 밥을 짓고, 하루를 났다. 겨울이면 그 물조차 차갑게 식어, 손을 담그면 뼈가 시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이끼 낀 다라이만큼 그 시절의 그를 정확히 비추는 물건도 없다. 고여서 천천히 썩어가는 물. 어디로도 흘러가지 못하는 물. 창밖의 부산항에서는 매일 거대한 배들이 어딘가로 떠났고, 컨테이너는 부두에 산처럼 쌓였다가 또 어딘가로 실려 갔다. 세상의 모든 것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방의 물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푸르게 변해갔다. 소년도 그랬다. 세상은 흐르고 있었고, 그만이 고여 있었다.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방에 살면서 정작 자신은 어디로도 떠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그 시절의 가장 정확한 비유였다.
집은 더 빠르게 가라앉았다. 어머니는 이미 떠난 뒤였고, 동생마저 집을 나갔다. 가끔 동생은 눈에 띄지 않게 들러 돈 될 만한 것을 들고 사라졌으므로, 그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였다. 아버지는 동생이 친 사고를 수습하고 빚 독촉을 피하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았다. 가압류 딱지가 가득한 방에 혼자 남는 시간이 길었다. 방학인데도 입을 옷이 없어, 그는 헐어버린 교복을 빨아 다시 입고 다녔다. 방학에도 교복을 입는 아이. 누가 물은 적도, 설명한 적도 없었다. 그냥 그 옷밖에 없었다.
어느 날 동네 가게에 들러 콩나물을 달라고 했다. 주인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이놈아야.” 그 한마디에 그는 이미 다 알았다. 아버지 외상값부터 좀 어떻게 해야겠다는 말이 이어졌다. 화는 나지 않았다. 가게 주인도 먹고살아야 했고, 누구도 특별히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섰다.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어도 사람은 얼마든지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 빈손으로 배웠다. 가난의 비참함은 종종, 누구를 미워할 수조차 없다는 데서 가장 깊어진다.
학교는 멀었다.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는 남부민동에서 한참 떨어진 온천장 쪽에 있었다. 도시의 서쪽 끝 산동네에서 동쪽 끝 학교까지, 35번 버스로 종점에서 종점의 거리였다.
차비가 있으면 거리는 줄었고, 없으면 도시는 끝없이 커졌다. 차비가 없는 날이면 그는 걸었다. 편도로 다섯 시간 거리를 몇 번 걸어보고는, 차라리 가지 않는 쪽을 택하기도 했다. 버스비 한 푼의 유무가, 한 사람의 하루를, 등교와 결석을, 세상과의 연결과 단절을 가르던 시절이었다. 가난은 거리를 늘린다. 같은 도시인데도, 주머니가 빈 사람에게는 모든 곳이 더 멀다.
학교에 가도 마음 둘 곳은 없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는 실습이 성적을 좌우했는데, 전체 수업의 삼분의 일이 넘던 그 실습 시간만 되면 그는 학교 옆 오락실로 직행했다. 성적이 하위권을 맴돈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산수 경시대회에서 상장을 받고, 정명장학회 장학생으로 두 해나 뽑히고, 반장과 부반장을 맡고, 과학의 날 발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상까지 받던 아이가, 정작 성적표에서는 바닥을 기었다. 그는 무언가를 잘할 수 있는 아이였지만, 그 잘할 수 있는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다. 갈 곳 잃은 명민함은, 종종 가장 엉뚱한 곳에서 타오른다. 그에게 그 엉뚱한 곳이 오락실이었다.
오락실은 피난처였다. 동전 몇 개만 있으면 시간을 잊을 수 있는 곳. 기계음과 버튼 두드리는 소리, 자욱한 담배 연기, 동전이 투입구로 떨어지는 소리. 그 소란한 어둠 속에서 그는 묘하게 안온했다. 무엇보다, 게임 화면 속에서는 규칙이 분명했다. 잘하면 이기고, 못하면 진다. 노력한 만큼 점수가 올랐고, 실수한 만큼 정직하게 죽었다. 현실보다 공정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상장을 받아도 집의 가난은 줄지 않았고, 아무리 걸어도 학교는 가까워지지 않았고, 아무리 착하게 굴어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력과 결과가 끝없이 어긋나는 세계. 그것이 그의 현실이었다.
그러나 오락실의 그 작은 화면 안에서만큼은, 입력과 출력이 어김없이 연결되었다. 버튼을 누른 대로 캐릭터가 움직였고, 패턴을 외운 만큼 더 멀리 나아갔다. 그 정직한 인과의 세계가, 부조리한 현실에 지친 소년에게는 일종의 구원이었다. 그가 코드라는 또 다른 화면 앞에 평생을 바치게 되는 것은, 이 무렵 처음 맛본 그 공정함 때문이었다. 정확히 쓴 만큼 정확히 동작하고 틀린 만큼 정직하게 실패하는 그 세계 안에서, 그는 평생 살기를 택했다.
그는 공정함에는 약했지만, 부당함에는 이상하리만치 완강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영어 시간에 한 교사가 맨투맨 교재를 통째로 베껴 쓰게 하는 과제를 냈다. 이른바 깜지. 교재의 문장을 종이가 새카매지도록 옮겨 적는, 머리가 아니라 손목을 쓰는 숙제였다. 태훈은 그것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베껴 쓰는 일에 무슨 배움이 있는지 그는 납득할 수 없었고, 납득되지 않는 일을 손이 먼저 하도록 두지 못하는 이였다.
대가는 매였다. 깜지를 해 오지 않을 때마다 교편으로 엉덩이를 맞았는데, 그 매가 회를 거듭할수록 두 배씩 늘어났다. 한 대가 두 대가 되고, 두 대가 네 대가 되었다. 한번은 이미 피멍이 든 허벅지를 한 시간 내내 다시 맞느라 수업을 통째로 놓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하지 않았다. 전교에서 그 과제를 끝까지 하지 않은 학생은 그 하나뿐이었다. 결국 교사는 방학이 올 때까지 형식적으로만 매를 들었고, 더는 두 배씩 늘리지 않았다. 누가 봐도 그것은 소년의 승리였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고집일 수도 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몇 장 베껴 쓰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무모한 완강함 속에는, 의 그를 설명하는 무언가가 이미 들어 있었다. 그는 권위가 시킨다고 해서 납득되지 않는 일을 하지는 않는 사람이었다. 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가 풀려야 일하는 사람, 정답이라고 주어진 것을 의심하고 자기가 납득한 길로만 가는 사람. 피멍이 든 허벅지로 끝까지 깜지를 거부하던 그 열일곱 살 소년은, 평생 자기 방식대로만 살게 될 한 사람의 가장 이른 얼굴이었다.
그 오락실에서 자주 마주치던 친구가 있었다. 같은 전자과의 이태훈이었다.
그가 이태훈을 부러워한 것은, 흔히 생각할 법한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성적도, 대학도, 돈도 아니었다. 이태훈의 집이 부러웠다. 다세대주택이긴 했지만 한 층을 통째로 썼고, 방이 셋이나 있었다. 남의 마당을 지나 재래식 화장실로 가야 하는 셋방살이의 소년에게, 한 층을 통째로 쓰고 방이 셋이나 되는 집은 거의 다른 세계였다. 이태훈은 자기 하고 싶은 만큼 오락을 하고도, 집에 가면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었다. 가끔 놀러 가면 먹을 것이 가득했고, 심지어 집에는 오락기까지 있었다. 그게 부러웠다. 거창한 미래가 아니라, 그저 밥이 있고, 어머니가 있고, 돌아갈 따뜻한 방이 있는 집.
가난한 아이의 부러움은 그렇게 소박해서 더 시리다. 누군가는 더 좋은 차나 더 큰 집을 부러워할 나이에, 그는 따뜻한 밥상과 돌아갈 곳이 있는 저녁을 부러워했다. 이태훈의 집 거실에서 함께 오락기 화면을 들여다보던 어느 저녁, 부엌에서 풍겨오던 구수한 청국장 냄새를 그는 오래도록 기억했다. 그 냄새는 그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집을 나서서 컴컴한 비탈을 다시 혼자 올라, 물도 잘 나오지 않고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자기 방으로 돌아오던 그 길을, 그는 더 오래 기억했다. 어떤 부러움은 미움이 되지만, 어떤 부러움은 그저 깊은 그리움이 된다. 그가 이태훈의 집에서 느낀 것은 후자였다. 그는 그저, 돌아갈 저녁이 있는 삶이 그리웠다.
고등학생이 된 그에게 특별한 꿈은 없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자주 들었다. 그것은 대단한 결심이라기보다, 늘 배경처럼 낮게 깔려 있는 음악 같았다. 집에 돌아가도 따뜻한 밥이 기다리지 않았고, 어머니는 떠났고, 동생은 가출했고, 아버지는 자주 부재했다. 혼자인 시간이 너무 길었고, 마음을 터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거의 매일 우울했고, 잠들기 전 눈물이 마르는 날이 드물었다.
등하굣길 담벼락의 영화 포스터는 소년의 가슴에 박제되어있었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그는 그 영화를 끝내 보지 않았지만, 그 한 문장을 제 생의 마감 기한처럼 받아 적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기한이 그를 버티게 했다. 끝이 정해져 있다면 그때까지는 어떻게든 견뎌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몇 번 서성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번번이 그 가장자리에서 발을 돌렸다. 죽는 일조차 그에게는 마음처럼 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차라리 사는 쪽에 떠밀렸다. 어차피 곧 끝날 테니, 일단 스무 살까지만 버텨보자. 그 빈약한 다짐 하나로 하루가, 그리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여기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이 시절의 어둠을 미화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것은 깊고 외롭고 위험한 시간이었고, 그가 그 시간을 통과해 살아남은 것은 어떤 대단한 의지 때문이 아니라, 그저 죽음을 미루고 또 미루는 사이에 뜻밖의 손들이 하나씩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는 적는다. 당신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여 있다면, 일단 살아보라고. 삶이 주는 결과는 거대한 노력이 없더라도 생각보다 달콤하다고. 그것은 멀리서 인생을 관조하는 자의 말이 아니라, 그 경계를 직접 서성여본 자가 가까스로 건져 올린 한 문장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학교에 안철수가 왔다.
컴퓨터 백신의 아버지라 불리던 사람. 1990년대의 그 이름은, 의사 출신으로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나누어 준 보기 드문 사표(師表)로 통했다. 그가 부산의 한 공업고등학교 강당에 와서 강연을 했다. 강연을 들었다고 인생이 그날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영화처럼 각성한 것도 아니었다. 다음 날도 그는 오락실에 갔을 것이고, 집에 가면 여전히 물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삶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강당을 나서는 그의 마음속에 아주 작은 것이 생겼다. 나도 저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그 말은 당시의 그에게 현실적인 꿈이 아니었다. 우주비행사가 되거나, 불치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거나, 날아다니는 자동차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과 비슷한 무게의, 허황된 상상에 가까웠다. 프로그래밍이 무엇인지도 당연히 몰랐다. 그러나 비현실적이라 오히려 좋았다. 가난한 아이에게는 현실적인 꿈이 가장 사치스러운 것이었고, 어차피 이룰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꼈기에, 그는 차라리 가장 먼 꿈을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품을 수 있었다. 잃을 것이 없는 자에게는, 가장 거대한 꿈이 가장 만만한 법이다.
그래서 그는 떠들고 다녔다. 오락실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언젠가 게임을 만들어 엔딩 크레딧에 자기 이름을 올리겠다고 몇 년을 말하고 다녔고, 대학에 가면 미국에서 살 거라고도 했다. 어느 동상 앞에서는 자유의 여신상 앞이라며, 부산국제영화제 행사장에서는 여기가 헐리우드라며 농을 쳤다. 아무 근거 없이 내뱉은 그 말들이, 하나씩 정말로 현실이 될 줄은 누구도, 그 자신조차 몰랐다. 꿈은 가끔, 그것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것밖에 가진 것이 없어서 이루어진다.
작은 불씨는 그 자리에서 타오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꺼진 듯 보였다. 그러나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재 밑에서 그것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고, 머지않아 대학의 어느 전산실에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고3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변변치 않은 성적과 엉망인 출결 탓에 취업은 가망이 없었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본래 목적은 취업이었지만, 기업들은 출결의 불성실을 곧 사람의 불성실로 읽었고, 매일 오락실로 사라지던 그를 받아줄 곳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수능을 보겠다고 공언했지만, 참고서 한 권 없이, 교과서도 거의 들춰보지 않고, 하염없이 오락실만 드나들었다. 함께 다니는 친구들은 있었으나, 속을 터놓을 사람은 없었다. 떠도는 일에 익숙해진 그에게 그것은 새삼스러운 외로움도 아니었다.
계절이 지나고, 정말로 스무 살이 코앞에 다가왔다. 대학은 어차피 가지 못할 테고, 이쯤에서 세상과 작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고개를 들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풀렸다. 노력한 것에 비해 수능 점수가 제법 잘 나왔고, 실업계 특별전형이라는 제도가 있어, 꿈에도 생각 못 한 합격 통지서들이 날아든 것이다. 책 한 권 펴지 않은 아이에게 찾아온, 설명하기 어려운 행운이었다.
도저히 대학에 갈 형편이 아니라는 것은 그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어차피 곧 죽을 거, 빚이라도 내서 한번 저질러보자. 대학이라는 곳이 도대체 어떤 곳인지 한 번은 보고 가자. 그 자포자기에 가까운 호기심 하나로, 그는 간신히 등록금을 맞추어 1998년 봄, 동명정보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에 입학했다.
스무 살까지만 살려던 소년이, 스무 살의 문턱을 넘어 대학의 문 앞에 선 것이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기 전에 한 번 보기 위해서 떠민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삶은 가끔, 죽으려고 들어선 문 안쪽에 살아갈 이유를 숨겨두기도 한다. 그 문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처음으로 마음을 터놓을 친구들과, 재 밑에서 다시 살아날 불씨와, 그리고 한 통의 전화로 이어질 작은 홈페이지 하나였다.
다만 그 문 안에는, 평생 잊지 못할 한 친구의 죽음 또한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