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처음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용달차는 해가 기울 무렵에야 그 도시에 닿았다. 짐칸의 살림들 사이에서 내내 흔들려 온 소년은, 트럭이 마지막으로 기어오른 가파른 비탈 끝에서 처음으로 남부민동을 보았다. 천마산 자락에 다닥다닥 매달린 달동네였다. 슬레이트와 시멘트로 지은 낮은 집들이 서로의 어깨를 짚고 비탈을 기어올랐고, 골목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날 만큼 좁았다. 저녁이 내리자 집집마다 불이 켜졌고, 산비탈 전체가 작은 불빛들로 촘촘히 박혔다. 멀리서 보면 제법 아름다웠을 그 풍경이, 그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그저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매일의 고역이라는 것을, 소년은 곧 알았다.
그들이 든 곳은 한국전쟁 무렵 지어졌다는 낡은 무허가 건물의 셋방 한 칸이었다. 집주인은 최재남. 아버지의 오랜 친구였고, 공업고등학교 교사였다. 곰팡이가 번진 창틀 사이로 허물어져 가는 시멘트 담이 보였고, 그 담 너머 저 아래로 부산항이 내려다보였다. 항구는 늘 멀리 있었다. 배들은 움직였고, 컨테이너는 쌓였고, 도시는 어디론가 부지런히 향하는 것 같았다. 다만 그 방 안의 소년만이 움직이지 못했다. 움직이는 것은 언제나 창밖에 있었고, 그는 그 창을 통해 세상의 분주함을 구경하는 사람이었다.
집은 집이라 부르기에 애매했다. 무엇보다, 화장실에 가려면 최재남의 마당을 지나야 했다. 재래식 화장실이었고, 그 마당은 자기 집이면서 자기 집이 아닌 땅이었다. 아침이면 등교 준비를 하는 주인집 식구들의 눈을 지나야 했고, 밤이면 어둠 속에서 남의 집 개가 짖었다. 배가 아픈 새벽마다 소년은 그 마당을 가로지르며, 얹혀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익혔다. 얹혀산다는 것은, 자기 몸의 가장 사적인 일조차 남의 마당을 빌려야 하는 일이었다. 가난은 종종 그렇게, 인간에게 허락된 최소한의 은밀함마저 거두어 간다.
물도 마음대로 나오지 않았다. 고지대라 제한급수가 잦았고, 물이 나오는 시간에 다라이며 양동이에 받아두지 않으면 하루를 날 수 없었다. 받아둔 물에는 곧 이끼가 끼었다. 그 미끄럽고 푸른 물로 세수를 하고, 그 물로 밥을 짓고, 그 물로 하루를 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위생이라는 말과는 너무 먼 생활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이 그저 생활이었다. 사람은 바닥에 닿으면, 바닥을 바닥인 줄도 모르고 산다. 비교할 다른 바닥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산은 소년의 입을 가만두지 않았다.
문제는 말투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아이의 억양은, 그 거친 동네에서 곧바로 표적이 되었다. 학교에서건 골목에서건, 서울말 쓴다고 시비가 붙었다. 재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논리가 아니라 구실이었다. 약한 자, 다른 자, 혼자인 자를 골라내는 무리의 본능에, 그의 억양은 더없이 좋은 표지였다. 부산 사투리는 마음먹는다고 하루아침에 익혀지는 것이 아니었고, 그 어색한 경계의 말씨가 그를 오래 시달리게 했다.
맨손으로 맞으면 차라리 나았다. 여럿에게 둘러싸여 맞거나, 몽둥이나 쇠파이프 같은 것이 등장하면, 어린 그는 이러다 정말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송도중학교의 공기도 한몫했다. 학교는 거칠었다. 부산에서도 험한 아이들이 모인다는 소문이 돌았고, 어떤 아이는 소년원에 다녀와 복학했고, 누군가는 이미 어른들의 세계에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칼을 보거나 누군가 크게 다치는 일이 그리 특별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운 곳이었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더 정확히는, 맞는 쪽을 피하는 일이었다.
그 무렵 한 학생이 스스로 생을 놓았고, 학교에는 한동안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매를 견디던 어느 밤, 소년의 마음에도 그 그림자가 잠시 스쳤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의 가장자리에서 번번이 발을 멈췄다. 죽는 일조차 그에게는 쉽지 않았고, 그래서 그는 차라리 사는 쪽으로 떠밀렸다.
살아남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말수를 줄였다. 입을 닫으면 억양이 드러날 일도 줄었다. 그리고 천천히, 한 단어씩 부산말을 익혔다. 억양을 깎고, 어미를 바꾸고, 침묵을 늘렸다. 종점에서 종점을 가야하는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그를 알아보던 얼굴들과도 마침내 멀어졌다. 원초적인 위협에서 벗어나기까지, 그렇게 한 시절이 통째로 들었다. 그가 잃은 것은 시간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 목소리의 일부를, 자기 말투의 고향을 그 비탈에 묻고 왔다.
그가 어디서든 말수가 적고, 튀지 않으려 하고, 새로운 무리에 천천히 스며드는 사람이 된 것은, 이 비탈에서 익힌 생존술의 잔향이다. 사람은 가장 위험했던 시기의 버릇을, 위험이 사라진 뒤에도 오래 몸에 지니고 산다. 그것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한참 뒤까지도.
이상한 것은, 그렇게 숨어 지내는 동안에도 성적만은 좋았다는 사실이다.
송도중학교에서 바른 자세로 앉아 수업을 열심히 듣는 일은 위험해 보였다. 모범생은 표적이 되기 쉬웠고, 잘난 척한다는 한마디면 매질의 구실로 충분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엎드려 자거나, 시선을 바닥에 깔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있을 때 수업 내용이 더 잘 들어왔다. 엎드린 채 팔에 얼굴을 묻고 귀만 열어두면, 칠판을 긁는 분필 소리와 선생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저절로 정리되곤 했다. 책상에 엎드려 자는 척하던 아이가, 사실은 그 누구보다 또렷이 듣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을 보면 성적은 반에서 상위권이었고, 전교에서 한 자리 등수를 한 적도 있었다.
겉으로 그는 사고뭉치에 가까웠다. 오락실에서 살다시피 했고, 롤러장에도 재미를 붙였고, 숙제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의 공식 기록은 또 달랐다. 3년 내내 개근을 했고, 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았으며,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차비가 없어 학교를 못 가는 날이 있던 이가 3년 개근을 했다는 것은, 그 개근 안에 얼마나 많은 도보와 인내가 접혀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어떤 날은 걸어서, 어떤 날은 굶은 채로, 그래도 그는 학교에 갔다.
이 모순이 그의 평생을 설명한다. 그는 가장 거친 자리에서 가장 조용한 우등생이었고, 가장 가난한 자리에서 가장 성실한 임원이었다. 숨어 있으면서도 빛났고, 빛나면서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다만 그 성실과 명민함을 알아봐 주고 키워줄 손이, 그에게는 끝내 없었다. 재능은 혼자 자라지 못한다. 재능에는 토양이 필요하고, 그 토양은 대개 돈과 시선으로 만들어진다. 그에게는 둘 다 모자랐다. 그의 미술에 대한 재능을 본 미술 선생님은 그의 형편에 절대 미술은 꿈도 꾸지 말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재능은 자라는 대신, 오래도록 땅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의 어느 날, 한 사실이 소년의 세계를 소리 없이 무너뜨렸다.
아버지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는 것. 아버지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라는 것. 그때까지 태훈은 아버지를 부산 동아대 졸업생으로 믿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진실을 알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세월 속에 흐릿하다. 다만 그 사실이 가슴에 박히던 순간의 감각만은 또렷하다. 발밑이 한 칸 꺼지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아버지의 학력이 무엇이든, 가난한 달동네 소년의 하루가 달라질 것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어린 그에게 아버지의 대학 졸업장은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마지막 담보였다. 집은 가난하고, 어머니는 떠났고, 학교는 험하고, 미래는 캄캄했다. 그 모든 결핍의 목록 끝에서, 그가 붙잡고 있던 단 하나의 희망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버지가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그 피를 물려받은 내 안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잠재력이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지금은 이렇게 바닥에 있어도, 나는 본래 더 나은 무언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막연한 믿음이, 캄캄한 시절을 버티게 한 작은 등불이었다.
그 등불이 꺼졌다. 아버지가 대졸이 아니라면, 내 안의 잠재력이라는 것도 애초에 근거 없는 상상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냥 가난하고 평범하고, 그 이하인 아이가 아닐까. 핏줄을 따라 내게로 흘러왔으리라 믿었던 그 무언가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자기 두뇌에 대한 의심이 그때 처음으로 그를 찾아왔다. 산수 경시대회에서 상장을 받아 오던 아이, 엎드려서도 전교 등수를 하던 아이가, 정작 자기 머리를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의심은 이후 십 년 가까이 그를 따라다니며,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마다 그의 발목을 잡는다.
한참 뒤에야 그는 알았다. 아버지의 학력 위조는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한 시대의 가난이 짜낸 절박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공부를 잘하고도 형편 때문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이, 세상의 문턱을 넘기 위해 이력서에 적어 넣은 한 줄의 거짓. 그리고 바로 그 거짓이 동아출판사에서 들통나, 가족을 이 비탈까지 굴러떨어지게 했다는 것을. 그러니 그 한 줄의 거짓말은, 아버지를 무너뜨리고, 가족을 부산으로 내몰고, 아들의 자기 확신마저 흔들어 놓은 셈이었다. 그러나 열네 살의 그에게 그런 맥락이 보일 리 없었다. 그가 본 것은 다만, 자신이 딛고 서 있던 정체성의 절반이 사실은 이야기였다는 차가운 진실뿐이었다. 사람은 때로, 자신에 대한 가장 중요한 믿음을 가장 약한 거짓말 위에 세워두고 산다. 그리고 그 거짓이 무너질 때, 무너지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중학교 3학년, 진학 경로를 정해야 할 때가 왔다.
그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과학고였다. 거창한 꿈 때문이 아니었다. 과학고는 3년을 무료로 다닐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이에게 무료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미래였다. 그러나 담임에게 과학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수학 성적이 기준에 미치지 못해 원서조차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산수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받아 오던 아이가, 이제는 수학 점수가 모자라 문 앞에서 돌아서야 했다. 재능이 토양 없이 어떻게 시드는지를, 그는 자기 성적표로 확인하고 있었다. 같은 머리였지만, 그것을 떠받쳐 줄 학원도, 과외도, 마음 편히 책상 앞에 앉을 저녁도 그에게는 없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외국어고등학교였다. 1990년대의 외고는 특별한 이름이었다. 적어도 태훈에게 외고는 다른 세계로 난 문이었다. 그 교복만 입어도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았고, 그곳에 가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이어질 것 같았다. 막연했지만 그랬다. 그리고 동네에서 가까운 외고에, 그는 합격했다. 아버지도 아들이 특목고에 간다는 사실을 내심 좋아했다. 형편은 어려웠지만, 그 이름만큼은 어딘가 아버지의 무너진 자존심을 잠시 받쳐주는 것 같았다. 짧은 동안, 소년은 다른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그 상상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최재남이 그를 마당으로 불렀다. 화장실에 가려면 매일 지나야 하던 바로 그 마당. 자기 집이면서 자기 집이 아닌 땅. 평소 온화하던 그의 얼굴이 그날은 심각했다. “지금 니 형편에 외고는 무리다.” 학비만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교재비가 들고, 과외가 필요하고, 가봐야 다 잘하는 아이들 틈에서 하위권을 맴돌 것이라고. 태훈은 신문배달을 해서라도 학비를 내겠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아버지 몰래 신문을 돌려 용돈을 벌고 있었다. 돈이 없으면 벌면 된다고, 아직 열다섯의 그는 그렇게 믿었다. 세상에 드는 돈이 학비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나이의 그는 다 알지 못했다. 최재남은 더 강하게 말했다. 정신 차리라고. 그 말은 조언이라기보다 선고처럼 들렸다. 자기 집 마당에 선 채로, 그는 한 소년의 미래가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크게 상처받은 그는 아버지에게 하소연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저씨가 학교 선생님이니 전문가의 말을 들으라고만 했다. 한참 뒤에야 그는 알았다. 아버지는 차마 자기 입으로 말하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 형편으로는 너를 보낼 수 없다고. 그래서 친구의 입을 빌린 것이었다. 가난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난을 통보하는 방식은, 때로 그렇게 비겁하고 또 그렇게 애틋하다. 직접 말하지 못한 그 마음을,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헤아렸다.
이미 일반고 지원 시기마저 지난 뒤였다. 일반고 역시 같은 이유로 제외되었다. 남은 길은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국립 공업고등학교,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 전자과뿐이었다. 그렇게 그는, 가고 싶던 어떤 문도 통과하지 못한 채, 남은 단 하나의 문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가지 못한 학교들의 목록은, 그렇게 또 한 줄 길어졌다.
훗날, 한참 의 일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면접실에서, 면접관이 그에게 물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가 무엇이었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뜻밖에도 회사에서의 어떤 프로젝트나 기술적 좌절이 아니었다. 이 마당이었다. 외고에 합격하고도 가지 못한 열다섯 살의 이 봄이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자, 그는 알았다. 그날 자신이 잃은 것은 학교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날 그가 진짜로 잃은 것은,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었다. 다른 삶이 가능하다는 그 작은 상상의 불씨가, 자기 집이면서 자기 집이 아닌 그 마당에서 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꺼짐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오락실로 숨어들던 날들도, 강연을 듣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도, 대학에서 F학점을 쓸어 담은 것도, 모두 그날부터 시작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 번 접힌 종이도 다시 펼쳐질 때가 있다.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역시, 잃어버린 자리에서 다시 켜질 수 있었다.
고등학교 등록금을 낼 때도 돈이 문제였다.
30만 원 남짓이었다. 납입 기한이 코앞인데 아버지는 어렵게 말을 꺼냈다. 수중에 돈이 전혀 없다고. 포항에서 약국을 하는 고모에게 가보라고 했다. 자초지종을 미리 일러두지도 않은 채, 아버지는 태훈과 동생에게 차비만 쥐여 포항으로 보냈다. 어린 두 형제가 시외버스를 갈아타며 먼 길을 돌아 찾아간 고모는, 아버지와의 묵은 돈 관계를 들먹이며 매몰차게 혼을 냈다. 어린 조카들 앞에서, 오래된 빚의 사연이 쏟아졌다. 그러고는 돌아갈 차비만 손에 쥐여 보냈다. 빈손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두 형제가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겨울 들판을 보며, 두 아이는 각자의 침묵 속에 있었을 것이다. 어떤 침묵은 어떤 대화보다 길다.
며칠 뒤,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아버지와 태훈과 동생, 셋은 함께 짜장면을 먹었다.
그 짜장면이, 이상하게도 오래도록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다. 돈은 없었고, 미래는 막막했고, 가고 싶던 학교에는 가지 못했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 없었다. 모든 조건이 불행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날의 짜장면은 따뜻했다. 김이 오르는 검은 면을 셋이 둘러앉아 후루룩 먹던 그 한 끼가, 그 뒤로 수년 안에 가장 행복했던 식사로 남았다. 행복은 가끔, 막막함 한가운데에서도 셋이 둘러앉을 수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온기에서 온다.
등록금은 끝내 다른 경로로 간신히 맞춰졌다. 그렇게 1995년 봄, 그는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사람들은 흔히 고등학교 진학을 인생의 출발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에게 그것은 출발이 아니었다. 그는 그 무렵 공부와 자신을 조용히 분리했다. 공부는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 하는 것, 꿈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꾸는 것. 자기에게 남은 것은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가지 못한 외고보다, 떠밀려 들어간 공고가 그의 길을 여는 첫 교실이 되었다.
다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었다. 천마산 자락의 그 축축한 방에서, 한 소년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 가지 못한 학교의 목록은 길어졌고, 자기 두뇌에 대한 의심은 깊어졌고, 어머니의 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그래도 아침은 어김없이 왔다. 그리고 그 공고의 어느 교실에서, 한 사람의 강연이 소년의 마음에 아주 작은 불씨 하나를 떨어뜨리려 하고 있었다.